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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요양원 덮칠 것 같아요” 불길 뚫고 현장 간 소방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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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전 전날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번진 속초시 장천마을에서 완전히 타버린 가옥들 사이로 화재진압 작업을 마친 소방대원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5일 오전 전날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번진 속초시 장천마을에서 완전히 타버린 가옥들 사이로 화재진압 작업을 마친 소방대원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몸이 불편한 어르신 50명이 요양원에 갇혀있는데 곧 산불이 덮칠 것 같아요.”

25㎏ 달하는 공기호흡기, 소방복 착용하고 1㎞ 뛰어 #30여분만에 요양원에 있던 노인 등 50여명 구조해

고성소방서 소속 김진석(52) 소방위는 지난 4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에서 산불이 발생했으니 전 대원은 모이라는 연락을 받고 집결지로 가는 길이었다. 소방버스엔 20여명의 대원이 타고 있었다. 이때 “요양원에 50명이 갇혀있다”는 신고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요양원까지는 거리는 2㎞에 불과해 곧바로 방향을 요양원으로 돌렸다. 1㎞를 남기고 이동이 어려워졌다. 앞 차량에 불이 붙어 도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김 소방위는 9명 대원과 함께 요양원까지 뛰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25㎏에 달하는 공기호흡기, 소방복을 입은 상태였다.

1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대원들은 요양원 건물 옆 창고까지 퍼진 산불을 진화하기 시작했다. 김 소방위 등은 선풍기 등을 통해 건물 안에 있는 연기를 빼내 탈출로를 확보했다.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해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대원들은 곧바로 휠체어 등을 활용해 노인들을 1층 입구로 옮겼다.

지난 5일 전날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밤새 강풍을 타고 인근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동해 오토캠핑장에서 한 소방대원이 펜션을 태우는 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뉴시스]

지난 5일 전날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밤새 강풍을 타고 인근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동해 오토캠핑장에서 한 소방대원이 펜션을 태우는 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뉴시스]

 간호사 출신 김순주(35·여) 소방사가 노인들의 상태를 일일이 확인했다. 다행히 다량의 연기를 흡입하거나 다친 환자는 없었다. 출동 30여분 만에 요양원 노인과 요양보호사 등 50여명이 구조됐다.

강릉소방서 장충열(57) 119구조대장도 대원 2명과 함께 지난 4일 강릉 옥계면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 대원들은 현장에서 치매가 있는 80대 할머니가 집안에 갇혀 있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해당 주택으로 향했다. 주변 집은 이미 불에 탄 상태였고 해당 집 LP 가스통에 불이 붙은 상태였다. 재빨리 불을 끈 대원들은 창문을 깨고 들어가 할머니를 구조했다. 장 대장과 대원들은 미처 대피를 못 한 이들을 찾기 위해 1㎞ 반경에 있는 집을 모두 확인했다. 대원들은 이날 70~80대 노인 7명을 구조했다.

지난 5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미시령로의 한 LPG 충전소에서 소방대원들이 충전소 주위로 옮겨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미시령로의 한 LPG 충전소에서 소방대원들이 충전소 주위로 옮겨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인명구조와 산불 진화 등을 위해 전국 각지의 펌프차 374대 등 소방장비 872대가 동원됐고 투입된 인원은 소방관 3251명을 포함해 1만 30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밤샘 진화작업을 했다. 옥계소방서 대원들은 5일 낮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화재를 진압한 후 강릉시 옥계면 남양 1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에 섞여 쪽잠을 자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소방관의 활약상에 감사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 6일 자신의 SNS에 강원도 화재 당시 현장에서 촬영된 소방관들의 사진과 함께 특정 당과 의원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글을 올렸다. 그는 화재 진압 작업 뒤 지쳐 쓰러져 있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올리며 “이분들 보고 반성 좀 합시다. 제발”이라고 썼다.

 고성·강릉=박진호·편광현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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