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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상주본 회수 막아달라" 소유자 소송 항소심도 기각

중앙일보

입력

훈민정음 상주본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배익기 씨가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훈민정음 상주본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배익기 씨가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국보급 문화재인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배익기(56)씨가 문화재청의 강제 회수를 막아달라며 제기한 소송이 4일 항소심에서도 또 기각됐다.

대구고법 배익기씨 낸 '청구이의의 소' 청구 기각 #"상주본 소장" 주장 배씨 이날 법정에 안 나타나 #'국보급 문화재' 상주본 위치는 여전히 오리무중

대구고등법원 제2민사부는 4일 배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 항소심 공판에서 배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배씨는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앞서 배씨는 2017년 4월 문화재청이 강제집행으로 상주본을 회수하는 것을 막아달라며 행정소송(청구이의의 소)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1심에서 “법적 소유권이 배씨에게 있지 않으므로 강제집행을 막아달라고 요구할 자격이 없다”는 취지로 기각했다. 배씨는 즉시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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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심을 맡은 대구지법 상주지원 민사합의부는 “원고는 국가 소유권을 인정한 민사판결 이전에 상주본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지만, 청구이의의 소는 판결 이후에 생긴 것만 주장할 수 있다”며 배씨 청구를 기각했다.

소송 결과가 확정되면 문화재청은 상주본을 회수하는 강제집행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상주본 소재는 배씨만이 알고 있어 문화재청이 강제집행을 하더라도 당장 찾아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고서적 수집가인 배씨는 2008년 한 방송을 통해 자신이 상주본을 갖고 있다고 처음 알렸다. 하지만 골동품 판매업자 조모(2012년 사망)씨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기나긴 공방이 시작됐다. 대법원은 2011년 5월 상주본의 소유권이 조씨에게 있다고 판결했지만 배씨는 상주본 인도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구속(2014년 대법원 무혐의 판결)되기도 했다.

훈민정음 간송본(왼쪽)과 훈민정음 상주본. [연합뉴스]

훈민정음 간송본(왼쪽)과 훈민정음 상주본. [연합뉴스]

조씨는 사망하기 전 상주본을 서류상으로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상주본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배씨에게 상주본 인도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배씨가 상주본이 어디에 있는지 밝히지 않으면서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화재청은 상주본의 훼손과 분실 등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상주본은 2015년 3월 배씨의 집에서 불이 났을 때 일부 훼손됐다. 배씨는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상주본을 꺼내왔고 이후 자신만이 아는 곳에 상주본을 보관 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배씨는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때인 2017년 4월 상주본 일부를 촬영한 사진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2017년 4월 배씨에게 공문을 보내 상주본 인도를 요구하기도 했다. 문화재청 측은 공문에서 “국가 소유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 3차례 인도 요청을 했으나 현재까지 반환되지 않고 있다”며 “소중한 문화재가 하루 빨리 국가에 인도되길 바라고 있으며 인도될 때까지 이 문화재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잘 보관·관리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했다.

하지만 배씨는 “상주본은 원래 우리 집에 있던 것이다. 내가 조씨에게서 상주본을 훔친 것이 아니니 애초 소유권이 그에게 있지 않았다”며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판결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모든 범죄행위가 밝혀지고 나서 소유권이 정리된 후 타당한 해결 방법을 따라야 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17년 4월 27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배익기씨. 상주=김정석기자

2017년 4월 27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배익기씨. 상주=김정석기자

이와 관련해 최근 배씨는 8년 전 상주본의 소유권을 판단한 민사 재판이 잘못됐다며 당시 증인들을 무더기로 고소했다. 증인들이 법정에서 사실과 다른 진술(위증)을 했다는 혐의다. 민사소송법에 따라 위증이 입증되면 재심이 열릴 수 있다.

한편 상주본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과 같은 판본이면서 표제와 주석이 16세기에 새로 더해져 간송본보다 학술적 가치가 더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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