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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최대 가와르 유전의 굴욕…미국과 원유 패권 경쟁서 밀릴까

중앙일보

입력

사우디 국영 석유 회사 아람코의 한 관료가 유전시설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우디 국영 석유 회사 아람코의 한 관료가 유전시설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 회사 아람코가 처음으로 경영 실적을 공개했다. 채권 발행을 위한 절차였다. 미국 애플(593억 달러)의 2배인 아람코의 막대한 순이익(1110억 달러)에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블룸버그, 아람코 투자설명서 분석 #“가와르 유전 생산량 하루 380만 배럴” #업계 기정 사실이던 500만 배럴 못 미쳐 #“원유 패권 힘의 균형 미국으로 기울어”

그런데 석유업계는 또 다른 사실에 주목했다. 이날 아람코가 채권 투자설명서를 통해 함께 공개한 사우디 동부 ‘가와르 유전’의 원유 생산 능력이었다.

한국 경기도(1만172㎢)의 약 절반 면적인 가와르 유전(5300㎢)은 중동 최대 유전으로 꼽힌다. 사우디의 원유 30%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석유업계는 ‘500만 배럴’이라는 가와르 유전 하루 최대 원유 생산량을 기정사실처럼 여겼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380만 배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주요 텍사스 유전지대인 퍼미언의 하루 최대 생산량(410만 배럴)을 밑돌았다.

싱가포르 리서치업체 에너지 에스펙츠의 비렌드라 초한 수석은 “놀라울 정도로 낮았던 가와르 유전의 원유 생산 능력은 아람코 보고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석유업계에서 ‘하루 최대 원유 생산량’은 특정 유전지대에서 하루 동안 최대한 산출할 수 있는 원유량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가와르 유전의 원유 생산 능력이 ‘업계 통념’에 비해 낮다는 얘기다.

아람코에 따르면 사우디 최대 유전지대인 가와르의 하루 최대 원유 생산량은 380만 배럴에 달했다. 이후 쿠라이스·사파니야 순이었다. 100만 여 배럴 수준이었다. [블룸버그 캡처]

아람코에 따르면 사우디 최대 유전지대인 가와르의 하루 최대 원유 생산량은 380만 배럴에 달했다. 이후 쿠라이스·사파니야 순이었다. 100만 여 배럴 수준이었다. [블룸버그 캡처]

석유업계가 ‘500만 배럴’을 예상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야기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셰일오일 채굴 기법이 막 개발되는 등 미 셰일오일 산업이 걸음마 단계였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사우디가 좌장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시장 독점력을 경계하던 미 정계는 ‘원유 정점론(peak oil)’을 제기했다. 중동 등의 원유 매장량이 곧 정점을 찍을 것이란 주장이었다.

이에 아람코 관계자들은 미 정치인들을 찾아가 설명회를 열었다. 미 정계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들은 가와르 유전의 원유 생산량으로 “최소 500만 배럴”을 제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런 사건 등을 계기로 ‘가와르 유전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500만 배럴 이상’이 정설처럼 퍼졌다”며 “2017년엔 미 에너지정보국(EIA) 역시 가와르 유전의 원유 생산량을 하루 580만 배럴로 추정했다”고 전했다.

가와르 유전의 원유 매장량도 기대보다 낮은 수준이다. 미 EIA 등은 가와르 유전의 원유 매장량을 750억 배럴로 추정했다. 하지만 아람코가 이번에 투자설명서에서 밝힌 가와르 유전 원유 매장량은 482억 배럴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하루 최대 수준의 원유 생산이 약 34년간 가능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사우디와 미국의 원유 패권 경쟁이 미국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미국의 최대 원유 생산량은 하루 1100만 배럴(8월 기준)로 사우디에 버금갈 정도였다.

블룸버그통신은 “두 국가의 주요 유전과 매장량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하지만 힘의 균형이 미국에 기우는 건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가와르 유전 사례만으로 사우디의 원유 생산력을 평가하는 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사우디 왕국은 나라 곳곳의 원유 매장량이 2260억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하루 1200만 배럴을 생산하더라도 52년은 거뜬히 버틴다는 얘기”라고 전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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