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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산불서 15m 거리 주민 "삽 들고 뛰어갔더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일 발생한 부산 해운대구 운봉산 산불 현장과 불과 15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조도제(65)씨가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을 가르키고 있다. 이은지 기자

지난 2일 발생한 부산 해운대구 운봉산 산불 현장과 불과 15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조도제(65)씨가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을 가르키고 있다. 이은지 기자

“‘타닥타닥’ 소리가 나서 뒷산을 보니깐 연기가 슬슬 올라오더라고요. 깜짝 놀라 삽을 들고 산으로 뛰어 올라가 불부터 껐죠.”

반송동 주민 “불씨가 날아다니는 게 눈에 보일 정도” #세림요양원 환자 35명 마당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대기 #사등마을 주민 2일 오후 9시 대피 소동 #부산소방 “95% 진압…오늘 중으로 완진”

부산 해운대구 운봉산 산불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불과 15m 떨어진 곳에 사는 조도제(65)씨의 말이다. 3일 오후 만난 조씨는 여전히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밤새 수시로 일어나서 불길이 우리 집 쪽으로 번지지 않나 확인했다”며 “다행히 산 쪽으로 바람이 불어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난 2일 오후 3시 18분 산불을 최초 발견한 목격자이기도 하다. 조씨는 곧바로 휴대전화로 현장 사진을 찍고 119에 산불 신고를 했다고 한다. 그는 “삽을 들고 산으로 뛰어가고 있으니깐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이 호스를 어깨에 메고 올라오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당시 초속 3~4m의 강풍이 불어 불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산불 발화지점에는 2~3m 크기의 소나무가 다 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조씨는“불씨가 바람을 타고 나무 사이사이를 건너뛰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운봉산에서 불이 나 연기를 내뿜으며 퍼지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운봉산에서 불이 나 연기를 내뿜으며 퍼지고 있다.[연합뉴스]

조씨의 집과 불과 100m 떨어진 곳에는 세림요양원이 있다. 치매 환자를 비롯해 병간호가 필요한 35명의 노인이 입소해 있다. 세림요양원장은 산불이 발생한 지 5분 뒤인 2일 3시 23분 산불을 알아챘다고 했다. 세림요양원 송영화(55) 원장은 “매캐한 냄새가 나길래 밖에 나와 보니 뒷산에서 연기가 막 올라오고 있었다”며 “곧바로 직원들과 함께 2, 3 층에 있던 입소자를 1층으로 옮겨 마당으로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마스크를 한 채로 마당에서 30분가량 화재 상황을 지켜봤다고 했다. 이날 오후 4시쯤 불길이 산 쪽으로 올라가고 연기가 너무 자욱해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 송 원장은 “건물 1층 바닥에 매트리스를 죄다 깔고 환자들을 앉히고, 눕혔다”며 “그렇게 또 1시간 정도 상황을 보다가 오후 5시가 돼서야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불안한 직원들은 뜬눈으로 밤을 샜다고 했다.

산불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곳과 1.5㎞ 떨어진 실로암 공원묘원 인근 사등마을 주민 30명은 지난 2일 오후 9시 급히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부산 기장소방서 이종명 소방경은 “오후에 발생한 산불이 저녁에 운봉산 반대편으로 날아왔다”며 “사등마을 주민들이 연기로 질식사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밤늦게 실로암 공원묘원 관리사무소로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이들은 3일 오전 6시쯤 무사히 집으로 귀가했다.

부산 해운대구 운봉산 산불은 화재 발생 15시간 만에 임야 20ha(약 6만평)를 태웠다. 축구장 28개의 면적이다. 부산 지역에 이틀째 건조주의보가 내려진 데다가 초속 4~5m 강풍이 불어서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방재연구과 권충근임업연구사는“운봉산은 소나무가 많아 산불에 취약하다”며 “건조한 날씨에 강풍이 더해지면서 산불이 사방으로 빠르게 번졌다”고 말했다.

운봉산 산불은 3일 오후 3시 기준 95% 진화된 상태다. 이 소방경은 “오후부터 다시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잔불 정리에 애를 먹고 있다”면서도 “늦어도 오늘 중으로 완전 진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대 산불 최초 발화지점 합동 감식 실시 3일 오후 부산 해운대 반송동 운봉산 화재의 최초 발화지점에서 경찰, 소방, 부산시, 산림청 등 관계자들이 모여 합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송봉근 기자

해운대 산불 최초 발화지점 합동 감식 실시 3일 오후 부산 해운대 반송동 운봉산 화재의 최초 발화지점에서 경찰, 소방, 부산시, 산림청 등 관계자들이 모여 합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송봉근 기자

부산 소방본부를 비롯해 산림청, 시청, 경찰은 이날 오후 2시부터 합동 감식에 나섰다. 권 연구사는 “입산자의 실화로 추정되지만, 현재로써는 어느 것도 단정 지을 수 없다”며 “감식결과는 오늘 오후 늦게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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