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판사 기각문이 지침됐나, 김은경 "낙하산은 관행, 특혜는 몰라"

중앙일보

입력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일 서울동부지검에서 열린 3차 소환조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일 서울동부지검에서 열린 3차 소환조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일 오전 검찰에 출석했다. 2월 초와 지난 주말에 이어 3번째 검찰 소환 조사다.

김 전 장관, 2일 3차 검찰조사 #답변, 판사 영장 기각사유와 유사 #"靑낙하산 인사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 #특혜 의혹 참고인도 "관행이라 생각"

김 전 장관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는 관행이자 시스템의 문제"라며 자신에게 제기된 전(前) 정부 인사 사표 강요와 채용비리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의 변호인은 2일 "큰 틀에서 보면 산하기관 인사에서 김 전 장관은 정당한 인사권을 행사했고 오랜 관행인 측면도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산하기관 임원 채용 과정에서 청와대가 낙점한 후보들에게 면접 정보 등 특혜가 제공된 점에 대해 "그 부분까지는 알지 못했다"며 혐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 영장기각 사유 답변 가이드라인 됐나 

이런 김 전 장관의 입장은 지난달 26일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밝힌 사유와 비슷하다.

당시 박 부장판사는 "청와대와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내정하는 관행이 장시간 있어 김 전 장관의 위법성 인식이 희박해 보인다"고 영장을 기각했다. 사표 강요 혐의에 대해선 '최순실 일파'라는 표현까지 사용했고 국정 정상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혐의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당시 법원의 이례적으로 긴 장문의 기각 사유(462자)가 수사를 받는 피의자와 참고인들의 답변 가이드라인처럼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장 기각 뒤 검찰 조사를 받은 산하기관 낙하산 출신 임원들도 특혜를 제공받은 것에 대해 영장 기각 사유처럼 "관행인 줄 알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반복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당시 법원이 '최순실 일파''오랜 관행' 등과 같이 정치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담아 밝힌 영장 기각 사유가 수사를 받은 이들의 답변 자료처럼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판사 출신 변호사도 "판사의 주관적 견해가 담긴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기각사유였다"고 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여 혐의로 수사를 받아 온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뉴스1]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여 혐의로 수사를 받아 온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뉴스1]

검찰은 환경부 산하기관에서 벌어진 청와대 추천 인사들의 채용 과정이 다른 민간 기업과 공기업의 채용 비리와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공모 전 합격자가 정해진 상황에서 허울뿐인 공모 절차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에선 신입 사원 채용 비리보다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조 단위 예산을 책임지는 공공기관 기관장 인사 비리가 더 심각하다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낙하산 기관장'들은 자신을 추천한 사람과 정당의 이해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환경부 공무원이 청와대가 낙점한 인사를 추천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입장이다.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지원자가 산하기관 임원으로 임명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검찰 "낙하산 관행이라면 산하기관 임원 왜 공모하나"

검찰은 공공기관 운영 법률에 따라 산하기관 임원 공모가 정식으로 이뤄졌고, 실제 수백명의 지원자가 알리오(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를 통해 공모에 참여했기에 청와대 추천 인사를 합격시킨 김 전 장관의 행위에 위법성이 짙다고 보고 있다.

현행 법률상 공공기관 임원은 임원추천위원회의 서류와 면접 전형을 거쳐 최종 3~5배수 후보가 선정되면 직급에 따라 장관이 후보를 대통령에게 제청하거나 기재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선발하게 되어있다. 청와대 낙점자가 최종 배수에만 오르면 사실상 임명되는 구조다.

검찰은 환경부와 산하기관이 청와대가 낙점한 인사를 최종 후보로 올리기 위해 서류와 면접 과정에서 각종 특혜를 준 정황도 파악했다. 현재 산하기관에 임명된 13명의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 중 상당수가 이런 과정을 통해 임명됐다고 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맨 왼쪽)도 곧 검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중앙포토]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맨 왼쪽)도 곧 검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중앙포토]

검찰은 최종 3~5배수에만 들면 장관의 인사권 행사가 가능한 기존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지만 현행 법률만으로도 특정 지원자에게 특혜가 제공된 부분은 공공기관의 공정한 채용을 방해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변호사 선임 문제로 출석을 연기 중인 신미숙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도 이번주 중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신 비서관도 김 전 장관과 함께 '환경부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신 비서관이 김 전 장관처럼 혐의를 전면 부인할 경우 증거 인멸을 우려해 구속영장 청구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