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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병' 10시간 투석받는데 맥도날드 왜 무혐의 처리됐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맥도날드 해피밀 세트를 저희 아이가 먹었고…용혈성요독증후군(HUS)으로 진행됐습니다. 맥도날드에 대한 재수사를 꼭 해서 책임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지난해 종결된 검찰의 이른바 ‘햄버거병’ 수사가 1년 만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달 28일 햄버거병이라 불리는 HUS에 걸린 한 피해 아동의 어머니 최은주씨는 방송에 나와 입장을 전했다. 피해 아동은 신장 기능을 90% 가까이 잃어 매일 10시간 투석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 맥도날드 매장.[연합뉴스]

한 맥도날드 매장.[연합뉴스]

피해자 측에서 주장하는 것은 ‘맥도날드에 대한 재수사’다. 지난 2016년~2017년 사이 총 5명의 아이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HUS 등 이상증세를 보였는데도 검찰이 맥도날드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2월 패티 제조업체인 맥키코리아만 축산물위생관리법위반 혐의로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7개월이나 수사에 매달렸던 검찰은 왜 맥도날드를 무혐의 처분한 걸까.

2016년 6월 '오염 패티 유통'의 전말은

2016년 6월 1일 패티 제조업체인 맥키코리아는 약 60만 개의 햄버거 패티를 생산해 맥도날드에 납품했다. 맥도날드는 이 패티로 햄버거를 만들어 판매했다. 해당 패티가 장출혈성대장균인 O-157균에 오염됐다는 걸 알게 된 건 한 달 뒤인 6월 30일이다. O-157균은 HUS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균이다. 하지만 이미 햄버거는 전국 매장에서 팔릴 대로 팔렸다.

이 순간 맥키코리아와 맥도날드가 해야 할 조치는 소비자들에게 “지난 한 달간 팔렸던 햄버거가 알고 보니 오염된 것이다”라고 알린 뒤 남은 패티를 수거하는 것이다. 식품관리안전지침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 실제로 10개 매장에서 15박스(약 4500개)의 패티가 아직 팔리지 않은 채 재고로 남아있었다.

맥도날드 직원은 "모 임원이 오염 패티 재고량을 0이라는 허위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JTBC 뉴스룸 방송 화면 캡처]

맥도날드 직원은 "모 임원이 오염 패티 재고량을 0이라는 허위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JTBC 뉴스룸 방송 화면 캡처]

하지만 두 회사는 이를 숨기는 방안을 택했다. 맥키코리아의 공장이 있는 지자체의 한 공무원이 ‘재고량이 남아 있지 않으면 외부 공표를 생략해도 된다’고 귀띔해주자, 이를 악용했다. 맥도날드 김모 상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패티가 전량 소진됐다고 보고하라’며 재고 담당 직원에 e메일로 지시한 뒤 재고를 슬그머니 회수했다. 맥키코리아는 지자체에 “재고가 없다”고 보고했고, 담당 공무원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실제 재고가 남아있는지 확인 절차는 거치지 않았다. 맥키코리아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전말이다.

피해 아동들이 먹은 패티가 '그 패티'였나

문제는 ‘2016년 6월 검출된 패티 오염’만으로 5명 아이가 걸린 병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컨대 30년간 영업해온 어느 식당에서 단 하루만 불결한 음식을 팔다 적발되고, 나머지 약 29년은 별 탈 없이 음식을 팔아왔다면 어떻게 될까. 법적으로는 해당 날짜에 식당을 이용하다 탈이 난 고객들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식당 주인이 다른 날에도 더러운 음식을 팔았을 거라는 의심은 가능하지만, 걸린 적이 없으니 알 길이 없다.

햄버거병 문제도 이와 맞닿아 있다. 5명의 아이들이 단순히 햄버거를 먹었다는 것에서 나아가, ‘오염된 패티로 만든 햄버거’를 먹었다는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돼야 한다. 당시 맥도날드는 오염 패티를 전량 회수한 뒤 폐기했다고 기록했는데, 이를 뒤집을 만한 증거가 없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설령 맥도날드가 패티를 회수하지 않았어도 다른 걸림돌이 있다. 5명의 아이들이 햄버거를 섭취한 시기가 오염된 패티 생산일(2016년 6월 1일)에서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한 명은 오염된 패티 생산일보다 4개월 앞선 2016년 2월에 햄버거를 먹었고, 나머지는 각각 2016년 7월과 9월, 2017년 5월에 햄버거를 먹었다. 오염 패티 생산일과 가장 가까운 2016년 7월에 햄버거를 섭취한 피해 아동은 발병 일주일 전에 HUS 집단 발병지인 일본 오키나와로 여행을 간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검찰은 질병관리본부와 식약처 관계자, 의사와 교수 등 전문가들을 불러 몇 차례 회의했지만, 전문가들은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다”고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맥키코리아에 대해 HUS 발병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상’이 아닌 오염된 패티를 유통한 데 대한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건 이 때문이다.

패티 오염 ‘은폐’ 책임은 왜 못 물었나

두 번째로 제기되는 의문은 그렇다면 왜 맥도날드는 맥키코리아의 ‘공범’으로 기소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햄버거병은 제외하더라도, 적어도 오염된 패티 재고를 조작한 데 대한 책임은 함께 물을 수 있지 않냐는 지적이다.

여기에서 검찰과 피해자 측의 입장이 엇갈린다. 피해자 측 류하경 변호사는 “맥도날드가 지자체에 재고량에 대한 허위 e메일 발송을 지시했다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국가에 사기를 쳤다는 뜻이다. 반면 검찰은 실제로 해당 e메일이 관할 지자체에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검찰 관계자는 “맥도날드 임원이 보낸 e메일은 맥키코리아 측에만 전달됐을 뿐, 지자체에는 전달되지 않아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잠잠한 재수사…이번에도 검찰 칼날 피해갈까

한 맥도날드 매장 모습. [연합뉴스]

한 맥도날드 매장 모습. [연합뉴스]

통상 오염 음식물 판매업자에 적용되는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는 왜 묻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맥도날드가 60만 개의 패티를 판매했을 당시는 패티 오염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고, 오염 결과를 받은 후에는 남은 패티 15박스도 전량 회수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처벌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측 주장은 다르다. 맥도날드가 2016년 6월 30일경 남은 오염 패티 15박스를 실제로 회수ㆍ폐기했는지 믿을 수 없고, 고의적이었든 아니든 결국 판매의 최종 책임은 맥도날드에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한 판단은 다시 한번 검찰에서 가려지게 됐다. 지난 1월 말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맥도날드와 정부를 식품위생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고발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권순정)는 사건 배당 두 달 넘게 압수수색 등 본격적인 수사 착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맥도날드도 “이미 무혐의 처리된 사건”이라는 것 외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한 변호사는 “현재 맥키코리아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라 검찰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재판 결과가 재수사 향방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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