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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공멸위기 '제조업 메카' 창원…민노총은 "일자리 사수 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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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1970년대 경남 창원기계공업단지를 시찰하고 있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        [중앙포토]

1970년대 경남 창원기계공업단지를 시찰하고 있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 [중앙포토]

197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하나로 창원을 기계·철강·금속 등 '기계공업 기지'로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그 덕분에 지난 40여년간 창원경제는 고속성장과 호황을 누려왔다. 하지만 '제조업의 메카'였던 창원의 조선·자동차·원전 산업은 중국의 추격과 구조개혁 지연 등으로 인해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창원은 동시에 '노동운동의 메카'다. 1987년 민주화를 전후해 분출했던 격렬한 노동운동 와중에 가장 강성으로 꼽혔던 마창노련의 산실이자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의 핵심 근거지이기도 하다. 권영길·노회찬을 배출한 곳이 창원이다.

 이런 창원 성산구에서 3일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치른다. 서울 여의도 정치권의 관심은 4·3 보궐선거 결과에 따른 정당별 득실과 유력 정치인들의 영향력 변화에 쏠려 있다. 하지만 창원경제의 장기 침체 때문에 벚꽃이 활짝 피어도 웃지 못하는 105만 시민들의 시선은 선거 결과보다 2012년 이후 계속되는 경제위기의 탈출구가 과연 있느냐에 쏠려 있다. 경남도와 창원시, 창원국가산업단지(산단)에 입주한 기업들은 산업통산자원부가 지난 2월 창원산단을 '스마트 산단 선도 프로젝트' 대상지로 선정하자 상당한 희망을 걸고 있다. 천성봉 경남도청 산업혁신국장은 "경남도가 중앙정부에 제안해 성사된 스마트 산단에는 2022년까지 1조2213억원이 투입된다"며 "기존 산업단지를 ICT 융합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산단으로 구조고도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조선산업 등 기존 일자리부터 지키라"며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한 대대적인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대한민국 제조업이 앓고 있는 '한국병'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창원은 과연 4차 산업혁명의 파도를 넘고 '미래 산업의 벚꽃'을 다시 피울 수 있을까.

자유한국당 강기윤 후보 유세장 부근에 보수 진영 후보들의 선거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장세정 기자

자유한국당 강기윤 후보 유세장 부근에 보수 진영 후보들의 선거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장세정 기자

지난달 26일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의원 총회에 참석한 정의당 여영국, 민중당 손석형 후보.

지난달 26일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의원 총회에 참석한 정의당 여영국, 민중당 손석형 후보.

 지난달 25일 창원시청 인근 상남동 유흥가. 지난 40년간 창원 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시절엔 창원산단에서 보너스를 두둑이 받은 노동자들이 쏟아져나와 흥청거렸던 거리다. 하지만 지금은 밤마다 거리가 썰렁할 정도다. 상가 일대 부동산 업소 관계자는 "가게 깃대만 꽂아도 돈을 쓸어담는다고 했던 곳인데 지금은 최저임금까지 급격히 올라 가게마다 종업원을 내보내고 주인이 직접 장사한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40대 식당 여주인은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재료비·임대료가 많이 오르고 매출이 30%가 줄어 직원 2명을 내보낸 뒤 낮에는 부부가 가게 일을 한다. 열심히 일해도 남는 게 없어 삶이 허무하다"고 말했다. 남편이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40대 주부는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남편의 특근이 20% 정도 적어 월수입이 50만원 줄었다. 장보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의 대표적 유흥가인 상남동 일대는 "장사가 안 된다"는 상인들의 한숨이 넘쳐난다. 장세정 기자

경남 창원의 대표적 유흥가인 상남동 일대는 "장사가 안 된다"는 상인들의 한숨이 넘쳐난다. 장세정 기자

 창원시정연구원 관계자는 "창원의 부동산 경기가 2012년 무렵에는 투기 붐까지 생기면서 평당 가격이 부산보다 높았는데 지금은 가격이 폭락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창원산단의 '대기업 귀족 노동자'들이 아파트를 두 채 이상 사들이는 경우도 많았지만 요즘 매물이 넘친다. 주거 여건이 좋은 용지 호수 옆 롯데아파트 35평의 경우 2016년 5억 6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최근엔 4억 6000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조선·자동차 산업이 쇠락하면서 창원은 '한국판 러스트 벨트(Rust Belt)'가 되고 있다. 2010년 7월 1일 마산·창원·진해가 합쳐진 통합 창원시는 인구 108만명으로 몸집은 커졌다. 하지만 2012년부터 지역경제가 무너지면서 매년 5000여명이 창원을 떠나 현재는 인구가 105만명으로 줄었다. 창원시에 따르면 창원의 수출액은 2016년 182억 달러에서 지난해 161억 달러로 감소했고 노동자 수는 같은 기간 12만 3518명에서 12만 1414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창원 실업률은 4.0%로 전국 평균(3.5%)보다 높았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창원 성산구를 고용-산업 위기 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허 시장은 "신산업을 유치해 기존 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을 돕겠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허성무 창원시장은 "창원 성산구를 고용-산업 위기 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허 시장은 "신산업을 유치해 기존 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을 돕겠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전수식 창원시정연구원장은 "창원 경제는 지난 40여년간 실패를 몰랐다. 잘 나갈 때 산업 전환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 창원경제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은 창원 고용·복지 플러스 센터다. 센터 창구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기자가 옆에서 잠시 지켜봤다. 20대부터 50대까지 남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20대 여자는 물론 유모차를 몰고 온 30대 여자도 보였다. 센터 관계자는 "실업급여 처리 건수가 지난해 1월 1769건에서 지난 1월엔 2710건으로 53%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창원시 진해구는 STX조선해양의 유동성 위기 사태를 계기로 지난해 4월과 5월에 각각 고용 위기 지역과 산업 위기 지역으로 지정됐다. 경남 조선해양기자재 협동조합 김영복 전무는 "창원의 조선 관련 기업들은 어느 해보다 춥고 배고픈 최악의 보릿고개를 맞은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창원산단이 자리한 창원시 성산구의 사정도 심각하다. 이 때문에 허성무 창원시장은 창원 진해구의 '고용·산업 위기지역' 지정 연장을 신청했고, 창원 성산구를 고용·산업 위기지역으로 신규 지정해 달라고 중앙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허 시장은 "기존 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분들에게 신산업(항공부품·방산·수소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창원 두산중공업의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탈원전 정책 때문에 고가 장비를 놀린다"며 한 숨을 쉬었다.

창원 두산중공업의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탈원전 정책 때문에 고가 장비를 놀린다"며 한 숨을 쉬었다.

 기업별로 들여다 보면 상황이 더 심각하다. STX조선해양 종사자는 조선산업 침체로 2013년 7941명에서 지난해 1월엔 2073명으로 급감했다. S&T중공업(옛 통일중공업)도 100여명의 직원에 대해 유급휴직을 시행 중이다. 창원의 대표적 기업인 두산중공업과 285개 원전 협력업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까지 겹쳐 이중 타격을 받은 경우다. 두산중공업은 매출이 급감하면서 지난해부터 유급휴직과 전출 등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2013년 말 8428명이던 종사자는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6963명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만 944명이 회사를 떠났다. 노조 관계자는 "1월부터 6월까지 사무직은 2개월씩 유급 휴직을 시행 중"이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에 납품해온 우수협력업체 S사를 직접 찾아가 봤다. 정부가 발표한 원전 건설 로드맵을 믿고 유럽에서 억대의 원전 측정기를 도입하고 원전 검사장비를 어렵사리 국산화했지만, 지금은 놀리고 있다. 이 업체 임원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신한울 3, 4호기 건설에 제동이 걸리면서 매출과 가동률이 각각 80%나 떨어졌다"며 "전력 생산을 통해 산업화에 기여해왔는데 매도당하고 있어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공론화에 부쳐서 신한울 3, 4호기라도 건설해야 기업들이 구조 전환의 시간을 벌 수 있다"고 호소했다.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이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상경투쟁을 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이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상경투쟁을 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이런 가운데 지난 1월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발표는 대우조선에 선박 엔진을 납품해온 두산중공업 및 STX조선해양, 관련 중소 납품업체들에까지 추가로 고용 악재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현대중공업이 인수 이후 대우조선의 선박 엔진을 외주에서 자체 조달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강성 투쟁 기조로 가는 분위기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정기대의원 대회에 참석해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조선산업 정책을 빅3에서 빅1으로 바꿔 경남에 거대한 고용불안의 싱크홀 만들고 있다. 구조조정을 막아내고 일자리 지키기 투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두산중공업 지회는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와 청와대 앞에서 상경 투쟁을 했다. 홍지욱 금속노조 경남지부장은 "벚꽃이 피어도 웃을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한 창원 노동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상태"라고 표현했다.

한철수 창원 상공회의소 회장은 창원 경제를 살리려면 노조의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철수 창원 상공회의소 회장은 창원 경제를 살리려면 노조의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기업인들의 시각은 다르다. 창원의 한 대기업 경영인은 "위기에 빠진 창원 기계공업이 살길은 4차 산업 혁명"이라면서 "자동화에 따라 로봇을 많이 투입하면서 인력을 줄여야 하는데 강성 노조 때문에 현재로썬 임금조차 깎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철수 창원상공회의소 회장은 "노동계는 회사를 살리거나 고통을 분담할 생각은 없고 끊임없이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챙기고 자식 세대의 미래조차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창원에서도 노동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통일중공업 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지금은 합리주의자로 변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대한민국 제조업이 총체적 위기에 빠지는 와중에 기업인도 게을렀고 노동계도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못 했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원청 기업 노동자들도 임금을 낮추는 노력을 해야 기업 투자가 살아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창원에서 만난 경남도청 공무원들은 "창원국가산단을 스마트 산단으로 전환하려면 도정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도의원 등이 김경수 지사 석방을 외치고 있다.  장세정 기자

창원에서 만난 경남도청 공무원들은 "창원국가산단을 스마트 산단으로 전환하려면 도정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도의원 등이 김경수 지사 석방을 외치고 있다. 장세정 기자

 1박 2일간 창원 현지를 취재하면서 내내 답답했다. 창원 경제가 순항한 지난 40년간 정부와 노사 모두 현실에 안주하다보니 '창원의 한국병'이 깊어졌다. 수술 기회를 계속 허비했다. 그런데도 "이러다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약하고 해법을 찾으려는 간절한 노력도 아직 부족하다. '제조업의 메카'가 사라진 창원에 '노동의 메카'만 홀로 존재할 수 있겠나.

40년이 넘은 창원산단은 구조개혁이 시급한 '고목나무'다. 스마트 산단을 유치한 창원은 '4차 산업혁명의 벚꽃'을 다시 피울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노사의 양보와 타협이 절실하다.  장세정 기자

40년이 넘은 창원산단은 구조개혁이 시급한 '고목나무'다. 스마트 산단을 유치한 창원은 '4차 산업혁명의 벚꽃'을 다시 피울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노사의 양보와 타협이 절실하다. 장세정 기자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장세정의 사사건건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장세정의 사사건건

창원=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이정원 인턴기자가 기사 관련 영상 편집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선거 한방으론 해결 어려운 40년 호황 중독 '창원의 한국병' #박정희의 창원, 고속성장 한계 #수출·내수·고용 '다중 쓰나미' #정부는 뒤늦게 "스마트 전환" #"노조는 기득권 챙기기 급급" #"산업구조 적극 전환해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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