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저의 의심 반격 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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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에 사과 성명을 내놓고 침묵을 지켜오던 평민당이 3일부터 정부쪽의 수사태도를 비난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으로 태도를 반전시키고 있다.
평민당은 이날 총재단 회의에서 근 1주일 동안의 관망 자세를 바꾸어 서 의원 등 관련자들을 위한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안기부로 파견하는가 하면 이번 사건이 점차 정치적 탄압성격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비난하고 나섰다.
침묵으로 일관해 오던 김대중 총재도 예정에 없이 당사 무국요원을 소집하여 『정부가 이번 사건을 평민당을 탄압하는데 악용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면서 『지금 비장한 각오로 귀추를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처음 발생했을 때 평민당은 즉각 대국민 사과 성명을 내고 서 의원을 제명하는 등 자숙하는 자세를 보였다.
일부 당직자들은 당의 이 같은 저 자세에 대해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김 총재의 강한 설득으로 수그러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김 총재는 이번 사건이 이 정도의 수준에서 마무리되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평민당 의원의 추가 입북설과 함께 사전 인지 혐의로 이길재 대외 협력 위원장이 구속되고 문동환 전 부총재에 대한 기소 및 평민연 소속 의원에 대한 조사 움직임 등 수사가 예상 밖으로 확대돼 나가자 사태가 심상치 않게 발전되어 간다는 것을 뒤늦게 느낀 것 같다.
우선 평민당은 정부가 이 사건을 터무니 없이 부풀러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점은 평민당의 반박 성명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서 의원은 평민당과 무관하게 입북했는데 마치 평민당이 관여한 것 처럼 보이게 하거나 추가 입북 의원이 있는 듯이 수사 내용을 흘리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소행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문 전 부초재를 비롯하여 아직 뚜렷한 혐의도 없는 평민연 소속 의원들을 소환하겠다고 의식적으로 퍼뜨리고 있는 것도 공작 정치 성격이 짙다고 보는 것이다.
평민당은 정부쪽의 이러한 수사 태도가 정치권에서 평민당의 위상에 대한 어떤 의도가 내포돼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
즉 민정당의 이종찬 총장이 평민당의 색깔을 시비하며 『폭력 혁명 세력과 결별하는 숙당을 단행해야 한다』는 등 당내 문제를 간섭하고 나서는가 하면 민주당도 지금까지 조심하던 태도와는 달리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고 나선 점이다.
특히 공화당쪽에서 공식 부인을 하고 있지만 김종필 총재가 미국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대중 총재가 물러나야 한다』고 얘기한 것으로 보도된 것 등은 모두 심상치 않은 조짐들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언동으로 보아 혹시 정치권에서 평민당을 아예 따돌리거나 거의 힘을 못쓸 정도로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하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또 수세에서 공세로 국면을 전환시킨데는 나름으로의 근거가 작용했다.
우선 정부가 서 의원 사건 1차 발표를 한 후 1주일동안 평민당 관련 부분에 대해 무성한 설만 퍼뜨렸지 명백한 확증하나 제시 못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앞으로 재판 등의 과정에서법률적 대응에 자신이 있다는 판단을 내린 듯 하다.
특히 가장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추가 입북설의 경우 몇 차례 당내 스크린 과정에서 『더 이상은 없다』는 확신을 가졌으며 정부가 확대하고 있는 부고지 혐의는 다분히 정치적인 것으로 치명적인 상처는 받지 않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물증 없이 무리하게 수사를 확대시켜감으로써 여론이 반전하고 있다는 감을 나름대로 감지하게 된 것 같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일부에서는 평민당의 요즈음 입장에 대해 동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가고 있다고 평민당은 보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평민당의 대응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미지수이나 사태가 악화될 경우 극한대결로 말미암아 정국이 큰 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 총재 자신은 대응 방법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고 있으나『1천만 서명운동을 철회한 적이 없다』는 등의 발언으로 보아 정치 탄압을 내세워 장외 투쟁까지 불사할 각오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물론 이 경우 정부·여당이 5공 청산과 민주화 조치를 회피하려고 사건을 의식적으로 확대했다는 점을 아울러 공격하여 자칫하면 색깔 논쟁과 과거 청산 문제가 뒤범벅이 되어 혼란을 가중시킬 소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당장 고단위 처방을 내리기 보다는 우선 당 차원에서 저항하는 모습을 부각시킬것 같다.
아직은 정치적 타협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으며 이 사건에 관한 한 정치적으로 적당히 마무리될 가능성은 희박하게 보인다. 그러나 사건이 평민당의 핵심 지도부로까지 확대되어갈 경우 이에 대한 평민당의 응전 강도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정국은 걷 잡을 수 없는 난기류에 휩싸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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