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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감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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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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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은 문재인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과 행동이 차고 넘친다. 흐느끼는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유족을 말없이 안아주는 모습에 가슴 뭉클하지 않았던 국민이 몇이나 됐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었던 강원국씨도 “노·문 대통령의 차이는 감성”이라고 평했다.

문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 “정치적으로 계산된 것”이라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품성 자체가 감수성이 풍부한 듯하다. 때때로 페이스북에 올리는 영화평을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는 “노무현 대통령 생각이 많이 났다. 다른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많이 운 적은 없었는데 도저히 억제가 안 됐다”고 적었다. “내내 울면서 뭉클한 마음으로 봤다”(영화 ‘1987’)는 관람 후기도 있다.

이런 감수성은 리더의 주요한 덕목이다. 타인과 공감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냉철한 사리 판단을 가릴 정도가 되면 곤란하다. 자칫 나라 정책이 산으로 갈 수 있다. 탈원전이 그렇다. 원전 재난 영화 ‘판도라’를 보고 문 대통령은 “눈물을 정말 많이 흘렸다. 영화를 통해 국민이 안전을 책임지는 나라를 만들자는 다짐을 함께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곤 탈원전을 밀어붙였다. 영화란 늘 그렇듯, 허구를 잔뜩 버무린 것이라는 사실에는 고개를 돌렸다. 탈원전에 반대하는 국민의 뜻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탈원전에 이어 또 한 번 영화 감상이 정책으로 이어질 판이다. 김원봉 의열단장의 독립유공자 서훈 문제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김원봉은 문 대통령이 영화 ‘암살’을 본 뒤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고 했던 인물이다. 그를 서훈하는 데 대해 국민 사이에는 논란이 있다. 북한 국가검열상 등을 지낸 이력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국민과의 사전 공감은 없을 듯하다. 영화 제작진의 생각이 국민 여론보다 무거워진 세상이 된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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