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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시어머니 모시게 된 아내가 웃을 수 있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29)

치열한 고민 끝에, 결국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됐다. 살림을 합치기에 앞서 나, 아내, 어머니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해 우려했다. [사진 photoAC]

치열한 고민 끝에, 결국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됐다. 살림을 합치기에 앞서 나, 아내, 어머니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해 우려했다. [사진 photoAC]

지난 2019년 1월 3일자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 27회 ‘며느리는 요양보호사가 아니잖니? 어머니가 바라는 것은’에 나온 것처럼 나는 결국 어머니와 살림을 합쳤다. 그러나 살림을 합치기 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아래 기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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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어머니와 교류는 명절이나 주말에 잠시 뵙곤 하는 것이 전부였다. 30년 전 분가 후 나는 20대 청춘에서 50대 중년이 됐고, 어머니는 50대에서 90을 바라보는 노인으로 변했다. 30년 넘게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가운데 어머니는 아버지 작고 후 15년을 홀로 지냈다.

그렇게 혼자의 삶에 익숙한 어머니가 ‘며느리’라는 타인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됐다. 또한 아내에게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예견됐다. 이로 인해 자칫 잘못하면 나와 아내 사이에 불화가 생길 수도 있고, 어머니와 좋았던 관계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홀어머니 모시기와 관련한 3가지 궁여지책

몇 주를 고민한 끝에 다음과 같은 3가지 궁여지책을 마련해 보았다. 첫째, 아내에게 충분한 자유시간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아내는 내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회계와 컨설팅 일을 도와주고 있다. 회사의 규모가 작다 보니 업무량이 많지 않아 출퇴근 시간이 다소 자유롭다. 아내가 매일 출근하느라 어머니가 낮 동안 혼자 계셔야 함을 충분히 이해시켜 드렸다.

그러나 퇴근 후 저녁시간이 새로운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퇴근 시간이 되면 아내는 바로 집으로 직행해 어머니의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생긴 것이다. 우리 부부만 살 땐 퇴근 후 인근 음식점에서 같이 저녁식사를 하거나, 지인들과 어울려 삼겹살에 맥주 한잔 기울이는 경우가 많았다. 여느 바쁜 직장인처럼 평일에 집에서 저녁을 먹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면서 퇴근 후 아내 혼자라도 꼬박꼬박 집으로 귀가해 어머니 저녁을 챙겨드려야 했다. 퇴근 후 본인의 자유로운 저녁시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아내의 근무 시간을 오후 2시 출근, 밤 10시 퇴근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근무시간을 바꾼 후 아침은 세 식구가 같이 먹고, 점심은 어머니와 아내 둘이서, 그리고 저녁은 어머니 혼자 드시게 됐다.

아내에게 충분한 자유시간을 보장해주기 위해 아내의 출퇴근 시간을 조정했다. 늦은 오후 출근, 늦은 밤 퇴근 덕분에 낮과 저녁에 여유가 생겼다. 아내는 점심에 어머니와 한상 가득 차려 식사를 하고 티타임까지 가진다. [중앙포토]

아내에게 충분한 자유시간을 보장해주기 위해 아내의 출퇴근 시간을 조정했다. 늦은 오후 출근, 늦은 밤 퇴근 덕분에 낮과 저녁에 여유가 생겼다. 아내는 점심에 어머니와 한상 가득 차려 식사를 하고 티타임까지 가진다. [중앙포토]

하루 세끼 중 아침은 간단히 먹지만, 점심은 가장 풍성하게 차려놓고 고부간 둘이서 만찬을 하게 됐다. 커피에 과일을 곁들여 두 시간 가까이 수다를 떠는 날도 많아졌다. 아내는 점심 후 어머니 저녁 준비를 미리 해 놓고 출근을 한다. 점심 만찬을 즐긴 어머니는 저녁이 되어도 공복을 거의 느끼지 못해 가볍게 혼자 소식을 하고 9시면 잠자리에 든다. 예전처럼 저녁시간이 자유스러워진 아내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 보였다.

대부분의 저녁을 나와 함께 외식하거나 지인을 만난다. 금요일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다른 친구 부부를 만나 밤새 맥주와 소주로 달리고 새벽 2시가 넘어 집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토요일 아침 숙취로 인해 초췌한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한세야 애미가 야근하느라 얼굴이 많이 상했다. 건강 해치지 않도록 너무 일 많이 시키지 마라”고 걱정을 하는 통에 우리 부부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웃음을 참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둘째, 나와 아내가 사적으로 쉴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아내가 저녁에 자유시간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늘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하다기보다, 아무래도 저녁에 집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TV를 본다든지, 소파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혼자만의 자유를 갖기는 어렵다.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사무실을 복층 구조의 오피스텔로 이전했다.

집 근처의 복층 오피스텔은 2층 층고 높이가 180cm여서 키가 큰 성인 남자도 서서 돌아다닐 수가 있다. 2층에 대형 TV, 소파, 작은 침대 하나, 전자피아노, 책장, 커피 테이블을 세팅하고 음향시스템과 은은한 불빛의 스탠드로 조명을 더 해 개인 거실처럼 꾸몄다. 나름대로 작지 않은 개인 공간이 생긴 셈이다. 어차피 회사가 직원 서너 명의 가족 같은 분위기라 아래층은 사무실로 쓰고 2층 복층은 개인이 머무는 거실로 꾸미는 데 문제가 없었다.

2층 복층은 사무공간과 분리된 개인 공간이라 나와 아내 이외에는 아무도 올라가지 못하게 했다. 특히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낮에는 아내와 함께 이곳에서 편한 복장으로 소파에 누워서 TV로 영화를 보기도 하고 배달 치킨을 시켜놓고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주말에 성당에 가는 것 이외에는 외출이 전혀 없는 어머니와 1년 365일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서로 부담이 될 수 있다. 아내도 혼자 있고 싶으면 언제든지 외출해 이곳 개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토요일은 부부의 날, 일요일은 어머니의 날

주말 중 하루는 부부를 위해 쓰되, 다른 하루는 어머니와 함께 보낸다.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일요일에 아내는 어머니의 친구분들을 위해 점심을 대접하겠다며 먼저 나서기도 한다. [사진 pchotoAC]

주말 중 하루는 부부를 위해 쓰되, 다른 하루는 어머니와 함께 보낸다.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일요일에 아내는 어머니의 친구분들을 위해 점심을 대접하겠다며 먼저 나서기도 한다. [사진 pchotoAC]

셋째, 토요일은 부부의 날, 일요일은 어머니의 날을 정했다. 평일 저녁은 우리 부부가 각자 편하게 개인적으로 시간을 갖지만, 토요일은 가급적 부부를 위한 날로, 일요일 하루는 온전히 어머니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토요일은 아내와 함께 산행하거나 뮤지컬 관람 등 문화생활을 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어머니와 점심 후 우리 부부는 사무실로 나와 1층에서 밀린 업무를 보거나 2층 개인 공간에서 와인을 마시며 저녁 늦게까지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일요일은 개인적인 외출은 삼가고 대부분의 시간을 어머니와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일요일 오전 9시 어머니를 모시고 성당 미사에 같이 참여하고, 점심은 큰형님과 작은형님 부부와 함께 외식하는 경우가 많다. 형님 부부가 오지 않는 날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점심 외식을 한다. 농협 등에 들러 화초를 고르거나 어머니가 좋아하는 간식을 쇼핑하기도 하고, 조용한 카페에 모시고 가서 세상구경을 시켜드리곤 한다.

한번은 아내가 어머니에게 일요일 점심을 대접할 터이니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나, 성당 친구분들을 집으로 초대하라고 권했다. 어머니는 정색하며 며느리가 너무 힘들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일주일 중 평일 5일은 각자를 위해, 토요일은 부부 위주로, 일요일 하루는 어머니 중심으로 지내기로 했다. 어머니와 합친지 3달이 다 되어 가는데 현재까지는 순항 중이다.

아직 건강이 그리 나쁘지 않고 혼자서도 늘 묵상과 기도로 꿋꿋하게 지내는 어머니가 감사하다. 적어도 한 3년 정도 지금과 같이 당신의 건강이 유지되길 기도하고 있다. 자녀들을 위해 부모가 물려 줄 가장 큰 덕목은 ‘재산상속’이 아니라 ‘부모의 건강’이라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이한세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이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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