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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28)

1920년생으로 100세를 바라보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강연 때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뉴스1]

1920년생으로 100세를 바라보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강연 때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뉴스1]

1920년생으로 100세를 바라보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강연 때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99세까지 살아보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는 60~75세였습니다. 그리고 75세 이후에도 공부와 취미생활을 하면서 건강할 때까지 일하면 90세까지도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참 스승인 김형석 교수의 말에 지극히 공감하면서도 노년이 되어서 과연 김 교수 말처럼 사는 것이 쉬운 일일까 되새겨보게 된다. 아마도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삶의 여정을 단계별로 들여다보면 노년기가 되면서 직면하게 되는 육체적·정신적 변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그만큼 노년의 준비도 쉬워질 것이다.

아래 그림은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 삶의 여정을 단계별로 보여주고 있다. 영아기→유아기→학령기→청소년기를 지나 장년기→중년기를 거쳐 노년기가 오고 마지막으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2세 정도가 된다고 하니 중간나이는 41세가 된다. 41세면 장년기에 해당하며 한창 열정적으로 일할 나이다. 그러나 의학적인 측면으로 보면 육체적 기능은 이미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리는 시기에 해당한다.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의 단계별 삶의 여정. [그림 스파이어리서치 제공]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의 단계별 삶의 여정. [그림 스파이어리서치 제공]

삶의 여정을 표현한 그림을 보면 산행과 닮았다. 산 정상에 다다르면 내리막길이 나타나는 것처럼 인간의 생로병사도 마찬가지다. 흥미롭게도 산 정상에 해당하는 장년기를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보면 장년기에서 멀어진 정도만큼 서로가 닮아있다. 유아기는 노년기 후반과 학령기는 노년기와 10대 초반은 중년기와 청년기는 장년기와 흡사한 면을 발견하게 된다.

삶의 여정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유아기는 삶의 끝자락으로 여행 중인 노환을 앓고 있는 노인과 육체적·정신적으로 일견 비슷하다. 유아나 건강이 좋지 않은 노인 모두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고 식사나 용변처리 등 일상생활에서 보호자의 돌봄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어린애가 된다는 옛날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유아기를 지나 학령기가 되면 노환이 오기 전의 노년기와 공통점이 많다. 학령기 어린아이가 육체적으로 연약하고 생활의 활동반경이 좁은 것처럼 노년기의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이 시기에는 보호자의 적절한 관찰과 도움이 필요하다.

10대 청소년기가 오면 40~50대 중년기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현상을 겪게 되는데 바로 사춘기와 갱년기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가 늘고 감정의 기복을 심하게 겪는다. 별것 아닌 말에도 상처받고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에 섭섭해한다. 나이로 보면 인생무상의 허무를 느끼기 시작하는 갱년기의 중년이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을 자녀로 두게 되는 때이다. 갱년기와 사춘기가 한 가정 아래 쉽지 않은 동거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생 여정도 산행과 같이 장년이라는 삶의 정상에 오르게 되면 중년과 노년이라는 산길을 따라 조심스럽고 안전하게 하산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삶의 정상에 해당하는 장년까지는 앞다투어 열심히 올라간다. 그러나 그 이후의 하산에 대해서는 계획하지 않거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태백산 천제단 하산 하는 등산객들. 인생 여정도 산행과 같이 장년이라는 삶의 정상에 오르게 되면 중년과 노년이라는 산길을 따라 조심스럽고 안전하게 하산해야 한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태백산 천제단 하산 하는 등산객들. 인생 여정도 산행과 같이 장년이라는 삶의 정상에 오르게 되면 중년과 노년이라는 산길을 따라 조심스럽고 안전하게 하산해야 한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예를 들어 영·유아기 때 용변처리를 못 하고 밥을 혼자서 먹지 못한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야단치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노환으로 고생하는 노인들이 이와 비슷한 상황이 되면 보호자인 성인 자녀들은 당혹스러워한다. 삶의 여정을 막 시작한 영·유아와 삶의 여정을 마무리하려는 노환의 노인은 인생 산행 높이로 따져보면 같은 선상에 있다. 영·유아가 보호자의 보살핌을 받듯이 노환의 어르신도 같은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또 다른 예를 학령기의 어린아이들에게서 찾아볼 수가 있다. 학령기가 되었는데도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만 머무는 아이들은 없다. 이에 반해 학령기의 어린아이들과 인생 산행 높이가 비슷한 어르신 중에 집에만 머무는 분들이 많다. 특별히 만나는 친구도 없이 하루 대부분의 여가시간을 TV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면 안전하고 재미있게 인생 여정을 하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어르신들이 노인여가시설을 잘 모르는 것은 학령기 아이들이 스스로 학교를 찾아가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도 성인 자녀들은 학령기 본인 자녀의 학업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어린이집과 학교를 알아보면서도 막상 부모의 문화와 여가생활을 살피는데 소극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학령기 자녀의 학업을 살피듯 노년기 부모의 취미와 건강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사회적 교류가 없이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부모라면 더욱 그러하다. 고립된 생활 습관은 영양부족, 운동 부족, 소통 부족 그리고 삶에 대한 의욕상실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건강도 나빠진다.

삶의 정상에 다다랐다가 어떻게든 내려오겠지 하고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은 지혜로운 노후대책이 아니다. 중년을 넘어서면 학령기와 청년기에 오르던 기억을 더듬어 그 길로 다시 내려와야 한다. 산 정상에 오르고 나면 안전한 하산이 중요하듯 삶의 여정도 계획된 노년기가 마련되어야 삶이 아름다워진다.

이한세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이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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