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흡연·음주는 교통벌점… 쌓이면 '건강 면허' 취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25)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40년동안 17.8세가 증가했다. 충분한 영양섭취와 의료 발달로 빈곤과 질병에서 해방된 덕분이다. 그러나 건강수명 기준으로 살펴보면 장수시대가 꼭 축복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진 pixabay]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40년동안 17.8세가 증가했다. 충분한 영양섭취와 의료 발달로 빈곤과 질병에서 해방된 덕분이다. 그러나 건강수명 기준으로 살펴보면 장수시대가 꼭 축복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진 pixabay]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2016년 기준 82.4세로 과거 40년 동안 17.8세가 증가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평균치와 비교해 1.6세가 더 높으니 장수국가인 셈이다. 충분한 영양섭취와 의료 발달로 빈곤과 질병에서 해방된 덕분이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을 건강수명 기준으로 살펴보면 장수시대가 꼭 축복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평균수명의 가파른 증가 뒤에는 예기치 않은 복병이 있는데 바로 늘어나는 유병 기간이다.

골골거리는 ‘유병 기간’ 무려 17년

건강수명은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며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산 기간을 말한다.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64.9세로 평균수명 82.4세에 비해 17.5년이나 차이가 난다. 이 기간이 유병 기간으로 평균 17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아프거나 수발이 필요하다.

따라서 건강수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수명의 중요성을 알기 위해 17년의 유병 기간이 어떠한 삶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노인에게 유병 기간은 건강회복의 어려움, 기간의 장기화 그리고 삶의 질 저하라는 삼고(三苦)를 동반한다.

유병 기간을 포함하고 있는 건강수명은 평균수명에 비해 17.5년이나 차이가 난다. 이 기간이 유병기간으로 병상에 있는 시간이 17년이 넘는 것이다. [사진 pixabay]

유병 기간을 포함하고 있는 건강수명은 평균수명에 비해 17.5년이나 차이가 난다. 이 기간이 유병기간으로 병상에 있는 시간이 17년이 넘는 것이다. [사진 pixabay]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방문하게 되면 중증 와상(침대에 온종일 누워 있는)어르신을 흔히 보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편히 누워서 휴식을 취하거나 잠들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 사정은 그렇지 않다. 철저하게 육신의 감옥에 갇혀있어 그 어려움과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만약 건강한 사람의 손과 발을 침대에 묶어두고 말을 할 수 없도록 입에 마스크를 착용시킨다면 엄청난 구속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서 용변을 보며 수년간 지내라고 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노인성 질환으로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실어증도 동반한다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 된다. 타인이 아닌 내 몸이 나를 구속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누구나 나이 들면서 이 과정을 피해갈 수 없다. 다만 개인마다 그 기간이 길거나 짧을 뿐이다.

평균 17년이 넘는 유병 기간을 단축해야 노년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 특히 자리보전을 하는 기간을 최대한도로 줄여야 한다. 그러나 통계는 유병 기간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대수명 및 건강수명 추이. 최근 4년간 평균수명이 1.5년이 늘어난 반면 건강수명은 0.8년이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의료적 혜택으로 늘어난 평균수명은 곧 건강수명이 아니어서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출처 통계청 (생명표, 국가승인통계 제 101035호), 제작 유솔]

기대수명 및 건강수명 추이. 최근 4년간 평균수명이 1.5년이 늘어난 반면 건강수명은 0.8년이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의료적 혜택으로 늘어난 평균수명은 곧 건강수명이 아니어서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출처 통계청 (생명표, 국가승인통계 제 101035호), 제작 유솔]

4년간(2012~2016년)의 추이를 보면 평균수명은 80.9세에서 82.4세로 1.5년이 늘어난 반면 건강수명은 65.7세에서 64.9세로 0.8년이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유병 기간도 15.2년에서 17.5년으로 2.3년이 늘어난 것이다. 의료적 혜택으로 늘어난 평균수명은 곧 건강수명이 아니어서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살도록 만들 수도 있다.

보건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건강하지 못한 삶의 기간을 결정하는 요소에는 경제력이 20%, 유전이 30%, 개개인의 생활습관이 50%를 차지한다고 한다. 따라서 유병 기간의 길이는 경제적 여유보다 개인의 생활습관이 좌우한다. 시골에서 넉넉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도 바지런히 움직이는 어르신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사람만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아니다.

생활습관만 고쳐도 건강수명 3년 가까이 늘어

행복한 삶의 추구도 중요하지만 불행하지 않은 삶을 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생활습관만 고쳐도 건강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한다. 미래의 유병 기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보는 것이 어떨까. [사진 pixabay]

행복한 삶의 추구도 중요하지만 불행하지 않은 삶을 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생활습관만 고쳐도 건강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한다. 미래의 유병 기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보는 것이 어떨까. [사진 pixabay]

건강을 해치는 개인의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식사, 음주, 흡연을 가장 큰 요소로 꼽힌다. 미국 워싱턴대학 건강측정평가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과식이나 불규칙한 식습관, 과음, 흡연의 생활습관만 고쳐도 건강수명을 2.8년 늘릴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고혈압, 고혈당, 운동 부족 등도 건강수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젊었을 때는 폐해가 바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생활습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마치 교통법규위반에 따른 벌점만으로 당장 면허취소는 되지 않아 운전에 지장이 없으므로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차곡차곡 누적된 벌점으로 인해 언젠가 삶의 건강 면허가 느닷없이 취소되고 누적된 벌점 포인트만큼 유병 기간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건강수명과 유병 기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건강수명이 짧아지면 그만큼 덜 살면 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덜 사는 것”이 아니라 “기나긴 유병 기간”이 기다리고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교통법규 교육을 받으면 벌점을 감해 주듯이 나도 모르게 쌓고 있는 미래의 유병 기간을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수명의 진가는 유병 기간을 최대로 줄일 수 있는 데에 있다. 행복한 삶의 추구도 중요하지만 불행하지 않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삶의 끝자락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한세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 Justin.lee@spireresearch.com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