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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속에 흉터 있지만, 살아남아 착한 일 하면 행복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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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호 10면

『호텔 사일런스』의 작가 올라프스도티르

올라프스도티르 교수는 ‘서울’이 발음상으로 아이슬란드어의 ‘태양’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사진 한길사]

올라프스도티르 교수는 ‘서울’이 발음상으로 아이슬란드어의 ‘태양’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사진 한길사]

아이슬란드 인구는 서울 도봉구와 비슷한 35만 명 내외다. 아이슬란드는 대한민국과 함께 FIFA 랭킹 공동 38위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가 독일을 2대0으로 이겨 깊은 인상을 남겼듯이, 아이슬란드는 아르헨티나와 1대1로 비겼다.

인구 35만 명 사는 아이슬란드 #국민 10%가 책 낸 글쓰기 강국 #고통은 특정국 아닌 인간의 문제 #타인도 우리의 일부라고 생각 #자신의 ‘쓸모’ 알고 선행 땐 치유

아이슬란드는 2018년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4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57위. 아이슬란드는 국민 10명 중 한 명이 책을 출간하는 출판 강국이다.

아이슬란드대 외이뒤르 아바 올라프스도티르 교수(예술사)를 인터뷰했다. 최근 그의 『호텔 사일런스(Hotel Silence)』의 한글판이 나왔다. 2018년 북유럽이사회(Nordic Council) 문학상을 받은 책이다. 그의 작품은 25개국어로 번역됐다. 작품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가디언·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서평을 게재하는 주목받는 작가다.

이런 내용의 책이다. 주인공은 49세다. 아내와 최근 이혼했다. 아내는 이혼하면서 외동딸이 사실 주인공의 딸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이혼 전 부부는 9년 동안 섹스리스 상태였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주인공은 자살을 결심하고 최근 전쟁이 끝난 어떤 나라에 있는 ‘호텔 사일런스’로 떠난다. 주인공은 자신의 쓸모를 발견하고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호텔 사일런스

호텔 사일런스

호텔 사일런스
외이뒤르 아바
올라프스도티르 지음
양영란 옮김, 한길사

인구 적은 만큼 한 사람 한 사람 소중

아이슬란드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1대1로 비겨 인상 깊었다.
“한국만큼 잘하지는 못한다.(웃음) 우리는 인구가 35만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좀 나이브해서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누구도 우리에게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인구가 적기 때문에 그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다. 각자 사회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슬란드는 EU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게 국가 정체성 유지에 도움이 되는가.
“EU 회원국은 아니다. 또 지리적으로 미국과 유럽 중간에 있지만, 우리는 유럽국가다. 다른 유럽국가들과 정치나 행정 등의 규칙이 동일하다. 우리에겐 국경을 공유하는 이웃 나라가 없다. 상비군이 없고 경찰은 총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아이슬란드는 문학과 어업, 관광으로 유명하다. 130여 개의 활화산을 보러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대도시를 벗어나 고독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치 지구 탄생의 순간을 보는 것 같은 장관을 볼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나.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패러독스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런 식, 저런 식으로 고통을 겪는다. 『호텔 사일런스』의 등장인물들처럼 우리는 모두 몸이나 영혼에 흉터가 있다. 우리의 인생 맛보기는 상처를 남긴다. 고통은 어떤 특정 나라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그런데 이 소설은 낙관적이다. 어둠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여행에 대한 소설이다. 원래는 자살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 새로운 출발점에서 인간의 생명력을 증빙하는 여행이 됐다.

내 주위에는 비관주의자들이 많다. 그중에는 아이슬란드나 한국의 똑똑하고 능력 있는 젊은이도 포함된다. 하지만 내 소설은 어둠의 세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죽지 않는다. 일부 작가들과 달리 나는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죽음은 쉽다. 죽음은 별로 독창적이지 못하다. 살아남는 게 보다 흥미롭고 도전적이고 어렵다.”

살아남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남들을 위해 뭔가 선한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 작은 일을 할 수 있다.”
한국 독자들을 위해 주인공이 자살하러 떠난 그 나라 이름을 밝힐 수는 없는가.
“나도 모른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도 우리와 같다는 것이다. 당신이 바로 그 나라 사람 중 한 명인지 모른다. 우리가 곧 타인, 다른 사람들이다(we are the others).”

페미니즘은 남녀 함께 책임·권리 공유

이 책에는 강한 종교성도 발견된다. 귀하의 종교관은?
“나는 제도화된 종교는 좋아하지 않는다. 종종 증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영적인 사색을 좋아한다.”
페미니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호텔 사일런스』에서 주인공을 남성으로 설정한 이유는 여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성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면 여성이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이게 픽션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삶에 관해 쓰려면 죽음을 언급해야 한다. 내게 페미니즘은 매우 간단하다. 남성과 여성이 세상 모든 일에 대해 책임과 권리를 공유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남녀 모두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남녀 주인공은 결혼하는가.
“나도 모른다. 책이 끝나면 나도 내 책의 일반 독자가 된다. 책의 저자에서 독자로 자신을 전환하는 게 작가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 독자로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어야 하며 작가를 혐오해야 한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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