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눈이 부시게'의 눈부신 연기...좋은 선배님들 덕분이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드라마 '눈이 부시게' 촬영현장의 남주혁, 김혜자, 한지민. [사진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촬영현장의 남주혁, 김혜자, 한지민. [사진 JTBC]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19일 막을 내렸다. 청춘의 좌절과 노년의 고통을 고루 어루만지는 섬세한 이야기는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와 함께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 관록의 배우 김혜자와 한지민은 25세 나이에 갑자기 70대로 늙어버린 '혜자'를 2인 1역, 외모는 달라도 같은 감성으로 연기해 감탄을 자아냈다.

남주혁은 "김헤자 선생님이 정말 멋지셨다. 늘 대본을 열심히 보셨다. 제게 지금처럼만 성실하게, 지금처럼 초심 잃지 말고 더 멋진 배우가 되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사진 JTBC]

남주혁은 "김헤자 선생님이 정말 멋지셨다. 늘 대본을 열심히 보셨다. 제게 지금처럼만 성실하게, 지금처럼 초심 잃지 말고 더 멋진 배우가 되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사진 JTBC]

 연기경력 5년인 배우 남주혁(25)에게도 칭찬이 쏟아진다. 그가 연기한 준하는 자신만만한 기자지망생으로 등장해 젊은 혜자를 설레게 한 또래 청년. 하지만 누구보다도 힘든 처지가, 꿈을 이루는 대신 뜻밖의 일을 하게 된 모습이 드러나 혜자를 안타까움에 빠뜨렸다.
 청춘의 자신감부터 자괴감까지 절절하게 그려낸 남주혁의 연기는 주변에서도 놀라는 모양이다. 마지막회 방송을 앞두고 19일 오후 만난 그는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냐, 연기 선생님이 누구냐, 주변에서 다양한 얘기를 듣고 있다"고 했다. 연기 칭찬에 대해 "제가 잘했다기보다 너무 좋은 선배님들, 감독님을 만났기 때문”이라며 "좋은 선배님들과 일하는 게 행복했다. 매 순간 촬영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주혁은 준하라는 캐릭터에 대해 "기자지망생보다 스물 다섯 살 청춘으로 다가갔다"고 했다. [사진 JTBC]

남주혁은 준하라는 캐릭터에 대해 "기자지망생보다 스물 다섯 살 청춘으로 다가갔다"고 했다. [사진 JTBC]

 젊은 혜자, 늙어버린 혜자와 고루 호흡을 맞췄는데. 
"1, 2부에서 젊은 혜자가 만난 준하는 너무 힘든 인생을 살고 있던 와중에 혜자가 들어와 속마음을 얘기하고 인생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이다.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아무리 짧은 인연이라도 많은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혜자(한지민)가 갑자기 사라지고 다시 마음의 문이 닫혔는데, 나이든 혜자(김혜자)가 말을 걸고 친한 척 하니까, 준하로서는 처음 보는 할머니가 왜 그러지 하는 마음 그대로 연기했다. 특별히 준비하기보다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다 열어 놓고 연기했던 것 같다." 
홍보관을 찾는 노인 중에 유독 까칠한 '샤넬 할머니'(정영숙)도 준하와는 살가운 관계다. [사진 JTBC]

홍보관을 찾는 노인 중에 유독 까칠한 '샤넬 할머니'(정영숙)도 준하와는 살가운 관계다. [사진 JTBC]

 기자가 되려던 준하가 일하는 홍보관은 사실상 노인들 등치는 곳이다.    
 "참 안타까웠다. 유일하게 의지하며 살았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세상이 왜 이럴까 절망 속에 빠지고. 홍보관에 있을 때는 이 친구가 정말 삶을 포기하려 하는구나 싶었다. 근데 타고난 심성이라는 게 있잖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잘하려고 하는 준하를 연기하면서, 정말 많은 게 무너졌지만 이 친구가 자기도 모르게 사람들 대하는 태도만큼은 다 놓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9부 장례식장 장면의 눈물 연기도 화제가 됐는데.  
 "대본에는 우는 걸로 나와있는데 준하로서 울고 싶지 않았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싫었고 눈물조차 머금고 싶지 않았다. 근데 혜자가, 사는 게 별거 아니지 않냐, 나는 내 인생이 애틋하다, 너도 네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사는 게 참 별거 아니지'라는 대사부터 여기서(가슴을 가리키며) 막 올라오는 거다.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애틋했으면 좋겠다'는 한마디에 무너져 버렸다."
꿈에서 다시 젊어진 혜자(한지민)는 준하(남주혁)와 꿈 같은 데이트를 즐긴다. [사진 JTBC]

꿈에서 다시 젊어진 혜자(한지민)는 준하(남주혁)와 꿈 같은 데이트를 즐긴다. [사진 JTBC]

 드라마에 그려지는 20대의 아픔과 70대의 아픔, 어느 쪽에 더 마음이 쏠렸나.
 "어느 쪽이라기보다, 사람은 똑같이 살아가는 것 같다. 제가 지금 20대라도 결국 그 순간이 올 것이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게, 6부에서 혜자가 하는 대사였다. 꿈에서 다시 젊어져 같이 행복하게 데이트하고 사라지기 직전에, 지금 이 순간 이 행복한 '기억'으로만 산다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 말이 너무 마음 아팠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사는 게 아니라 행복했던 순간만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시청자에게 10부의 반전이 충격을 줬는데.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시놉시스를 보고 하고 싶었고, 감독님을 만나 궁금했던 점을 물어봤는데 속 시원하게 말해주셨다. 대본이 12부까지 나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더 완성도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었다." 
혜자(김혜자)를 향한 아빠(안내상)의 안스러운 눈빛은 이 드라마에서 일종의 복선이다. [사진 JTBC]

혜자(김혜자)를 향한 아빠(안내상)의 안스러운 눈빛은 이 드라마에서 일종의 복선이다. [사진 JTBC]

 '눈이 부시게'는 대본만 아니라 촬영까지 2월 첫 방송 이전에 모두 마친 사전제작 드라마다. 촬영은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됐다.
 남주혁은 현장을 이끈 연출자 김석윤PD를 "제 인생 최고의 감독님"이라고 했다. "모든 배우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긴장감을 풀어줬다. 리허설 때도 아닌 거는 확실하게 아니라 말해주고, 잘한 건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연기가 좋아도 자동차 소리 같은 게 들리면 못 쓰는 건데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고, 카메라에 마이크가 나와도 다 지울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는 이번 드라마에서 자신의 새로운 도전을 "뭘 안 하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아무 것도 안 하려고 한 것은 처음인데 방송 전까지는 너무 겁났다"고 했다.

'눈이 부시게'의 준하(남주혁)은 깉은 상처, 아픈 속내를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사진 JTBC]

'눈이 부시게'의 준하(남주혁)은 깉은 상처, 아픈 속내를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사진 JTBC]

 뭘 안 하려고 했다니, 그럼 전작들은 어땠나.
"'연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분노, 슬픔 이런 게 있으면 카메라 앞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근데 살아가면서, 저를 돌아봐도 그렇고, 화가 나도 티를 안 내는 사람도 있고, 너무 슬픈데 안 울고 사람 없는 데 나가서 우는 사람도 있지 않나. 준하라면 감정을 숨기는 아이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힘든 일이 있는 사람일수록 안 드러낸다는 생각도 했다. "

 촬영을 진작에 끝낸 그는 매회 가족과 함께 본방을 봤다고 했다.

 "저희 할머니가 제가 중학교 때, 거실에서 TV를 보시다가 주혁이도 저기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신 적이 있다. 저는 그때 연기자의 꿈이 없었다. 농구를 잘하고 싶었고, 농구 선수로 TV에 나온다면 몰라도, 이렇게 연기하고 있을 거란 생각은 없었는데 할머니의 꿈을 이뤄드린 거 같아서 행복하다. 원래 일찍 주무시는데 늦은 시간까지 함께 드라마를 봤다. "

 부상으로 농구를 그만둔 그는 처음에는 모델로 데뷔, 악동뮤지션의 뮤직비디오 출연을 거쳐 2014년 tvN 드라마 '잉여공주'로 연기를 시작했다. "'잉여공주'를 하면서 선배님들이 즐겁게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연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확실하게 생겼다"며 "연기에 대한 꿈이 생기고부터는 어느 하나도 허투루 한 적 없다"고 했다.

배우 남주혁. '눈이 부시게'에서 그는 연기자로서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드라마하우스

배우 남주혁. '눈이 부시게'에서 그는 연기자로서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드라마하우스

 지난해 '안시성'은 그의 영화 데뷔작. 그의 드라마는 '역도요정 김복주'나 이번의 '눈이 부시게', 차기작 '보건교사 안은영' 등 여성이 전면에 부각되는 작품이 많다는 점도 주목을 받는다.

김혜자 한지민과 호흡 맞춘 남주혁 #좌절한 청춘의 자괴감 절절히 표현

 작품 선택의 기준이라면. 
"제가 공감이 되고, 좋아하는 작품만 선택한다. 제가 맡은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얘기뿐 아니라 제 캐릭터가 공감이 되고,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다면 역할에 상관없이 어느 작품이든 하고 싶다."
 연기자로서 스스로 생각하는 지금의 위치는.  
 "스물한 살 때 연기자의 꿈이 생겼고, 그때는 당장 내가 내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안 될 걸 알았기 때문에. 10년이란 목표가 생겼다. 그때는 남주혁이 어떤 배우가 돼 있을까. 공감이 되고 함께 울고 웃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10년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과정이다. "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