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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자진 시정 거부한 구글의 ‘약관 갑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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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인터넷에 접속해 궁금한 내용을 검색하고, e-메일을 주고받고, 동영상을 즐기고, SNS 메신저를 하려면 누구나 ‘약관(約款)’에 동의해야 한다. 약관을 건너뛰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거나,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그런데 약관이 불공정하다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4일 구글(유튜브 포함)·페이스북·네이버·카카오 등 4개 시장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한 약관에 대해 시정을 권고(구글 외엔 자진 시정)했다고 밝혔다. 약관을 근거로 회원이 ‘사생활 동영상’을 삭제하더라도 서버에 일정 기간 들고 있거나, e-메일 정보까지 무단 수집하는 ‘갑질’을 바로잡는다는 취지에서다.

눈에 띄는 건 ‘구글 외엔 자진 시정’이란 부분이었다. 지난해부터 4개 플랫폼 업체를 대상으로 한 약관 점검에서 페이스북·카카오는 각각 5개, 네이버는 1개 조항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았다. 이들 업체는 공정위 의견을 전부 받아들였다. 네이버·카카오는 지적사항을 반영해 약관을 고쳤고, 페이스북은 자진 시정을 약속했다. 그런데 이번 심사에서 가장 많은 8개 조항이 불공정하다고 지적받은 구글은 공정위 지적을 절반만 수용했다. ①회원 저작물에 대한 광범위한 이용, ②사업자의 일방적인 콘텐트 삭제, 계정 해지 또는 서비스 중단, ③사전통지 없이 약관 변경, ④서비스 약관 및 개인정보 수집 등에 관한 포괄적 동의 간주 등 4개 조항을 고치지 않자 공정위가 시정 권고를 내렸다.

구글이 “문제가 있는지 따져보겠다”며 고치지 않은 4개 조항 모두 대표적인 ‘갑질’ 약관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유튜브는 ‘일방적인 콘텐트 삭제’ 조항을 들어 일부 동영상을 이유 없이 차단하기도 한다. 선정적인 동영상이나 명예훼손 게시물을 여과 없이 노출하는 것과 대비된다. “인공지능(AI) 심사와 자체 기준에 따른다”는 게 구글 측 해명이다.

공정위는 구글이 시정 권고를 60일 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강제성이 있는 시정 명령을 발동할 계획이다. 그래도 이행하지 않으면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구글 측은 “공정위와 긴밀히 협의해 처리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구글은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국내에서 연 5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법인세는 200억원 정도밖에 내지 않는다. 개인정보 보호, 저작권 이용, 통신망 사용료 문제에서도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약관’의 형식을 빌린 갑질도 여기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