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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김경수 재판 불복, 문명국가선 상상 못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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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 조작 혐의로 구속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9일 서울고등법원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9.03.19 김상선 기자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 조작 혐의로 구속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9일 서울고등법원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9.03.19 김상선 기자

"재판 시작 전에 판사 비난하고 불복, 문명국가서 상상 못해"

김경수 경남지사의 항소심 재판부가 재판이 본격 시작되기도 전에 벌어진 불공정 논란에 대해 "법정 모독"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불공정 우려가 있으면 지금이라도 기피 신청을 하라”고 주문했다.

김경수 지지자들에 작심 발언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 차문호)는 19일 오전 10시 30분 컴퓨터등 장애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지사의 항소심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김 지사는 법정 구속 48일만에 직접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차 부장판사는 “재판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사건에 임하는 재판부의 입장을 말씀드리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는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각에서 완전히 서로 다른 재판 결과가 당연시된다고 예상하고 이를 재판부의 경력때문이라며 비난하면서 벌써부터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재판을 해오는 과정에서 이런 사례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문명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당혹스러움을 드러냈다.

이어 법정을 경기장에, 검사와 피고인을 운동선수에, 그리고 법관은 심판에 불과하다고 비유하면서 “재판 결과를 예단하고 비난하는 건 공이 골대에 들어가는지 여부를 보기도 전에 심판을 핑계삼아 경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법관은 눈을 가리고 법을 보는 정의의 여신처럼 재판 과정을 확인하고 정답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고독한 수도자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김 지사의 지지자들이 재판부를 압박하는 데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피고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한다는 이유로 진실이 무엇인지는 상관 없이 불충분 정보만으로 어떤 결론이 사실이라 추측하거나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자기가 원하는 결론만 요구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며 “이는 무죄 추정 원칙을 받으며 억울함을 밝히겠다는 피고인 입장을 폄훼하는 것이며 인생을 결정짓는 재판을 앞두고 몸부림치는 피고인을 매우 불안하고 위태하게 만드는 것이며,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고 재판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경수와 옷깃도 스친 적 없어…공정 재판할 것”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1심 판결이 나오자 지지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1심 재판장인 성창호 부장판사를 맹비난했다.[뉴스1]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1심 판결이 나오자 지지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1심 재판장인 성창호 부장판사를 맹비난했다.[뉴스1]

차 부장판사는 “국민께 송구한 마음과 사법 신뢰를 위해 이 재판을 맡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전속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한 이력에 대한 논란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그는 “우리 재판부는 피고인과 옷깃도 스치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도 “현행법상 배당을 피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으로서 우리 재판부가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면 거부하거나 피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라며 “피고인이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면 재판부가 바뀌었을 것이고 그렇게 해주길 바랐지만, 오늘까지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차 부장판사는 “향후 재판 과정에서 불공정 우려가 있으면 종결 전까지 얼마든지 기피 신청을 하라”고 다시 한번 권유하고 “피고인은 물론 모두가 승복하는 재판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하자”고 말을 맺었다. 김 지사는 차 부장판사의 발언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도 넘는 판사 '마녀사냥'에 법조계 우려

앞서 차 부장판사는 김경수 지사의 항소심을 맡게 되자 온라인에 실명과 사진이 퍼지며 ‘마녀사냥’의 대상이 됐다. 김 지사의 일부 지지자들은 차 부장판사를 향해 “김 지사에게 엄한 짓 하면 죽는다”, “제정신이 박힌 판사가 아니다”는 비난 댓글을 달았다. 차 부장판사가 과거 2007~2008년 양승태 대법관 전속재판연구관 중 한 명으로 근무했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됐다는 게 비난의 근거였다. 그는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한 사촌동생인 차성안 판사를 설득한 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판사들에 대한 인신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법치주의 국가에서 헌법상 독립된 재판권을 가진 법관의 과거 근무 경력을 이유로 특정 법관을 비난하는 건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앞서 1심에서 김 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성창호 부장판사도 선고 직후 지지자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은 바 있다.

박사라ㆍ이수정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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