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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美 비꼰 '차이나 찌질래퍼' 그뒤엔 中공산당의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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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차이나’

싸구려 공산품에 붙어있는 원산지 표기가 생각나신다고요? 그렇다면 오늘 보여드릴 ‘메이드 인 차이나’는 조금 생소할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힙합 씬에서 가장 ‘핫한’ 동양인으로는 꼽히는 중국 4인조 힙합 그룹 ‘하이어 브라더스(Higher Brothers)’의 대표곡 제목인데요.

하이어브라더스의 히트곡 '메이드인차이나' 커버 [사진 아미노]

하이어브라더스의 히트곡 '메이드인차이나' 커버 [사진 아미노]

무명 래퍼였던 이들을 하루아침에 스타로 만든 곡 ‘메이드 인 차이나’를 들어볼까요.

동양인 편견 정면으로 맞서는 컨셉 #“메이드인차이나”로 중화주의 뽐내기도 #유튜브 1억뷰·빌보드 힙합 1위 등 ‘돌풍’ #민족주의 부활·편견 재생산 우려도

“랩? 차이나? 뭐라는 거야? 이게 중국식 랩이야? 그냥 ‘칭챙총’하는 거 아냐?”

(Rap? China? What are they even saying? Is this Chinese rap music? Sounds like they are just saying ‘ching chang chong’)

도입부부터 그들의 색깔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미국인, 그중에서도 흑인이 지배하는 힙합계에서 “중국인이 무슨 힙합이냐”며 무시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보기 좋게 비튼 거죠.

이 노래는 2년 전 유튜브에 공개됐고 1500만 뷰를 기록했습니다. 중국어로 된 힙합곡으로는 이례적인 성공이었죠. 인지도를 높인 이들은 지난 2016년 뉴욕의 유명 음반회사 ‘88 라이징’과 계약을 맺으며 2017년에는 아시아, 2018년에는 북미 투어를 시작했고, 3주 전에는 미국 힙합 슈퍼스타 ‘솔자보이’가 피처링한 신곡을 발표하며 전 세계 힙합 팬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힙합 불모지인 중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20대 중국인 래퍼들이 유튜브 스타에 그치지 않고 본고장에 출사표를 던진 겁니다.

하이어브라더스 월드 투어 포스터. 오는 27일 홍콩을 시작으로 올해 9월까지 보스톤·워싱턴·벤쿠버·파리·런던 등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사진 트위터]

하이어브라더스 월드 투어 포스터. 오는 27일 홍콩을 시작으로 올해 9월까지 보스톤·워싱턴·벤쿠버·파리·런던 등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사진 트위터]

흑인들의 전유물이었던 힙합계에서 동양인 뮤지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칭챙총” “쓰레기 초밥” “짱깨 깜둥이”라 부릅니다. 인종차별에 맞서는 의미로 스스로 멸칭을 붙이는 겁니다. 힙합 특유의 ‘그래서 어쩌라고’ 정신으로 자신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일종의 저항 운동이라고 할까요.

이번 [고 보면 모 있는 기한 계뉴스-알쓸신세]에선 세계 힙합 무대를 주름잡는 아시아 래퍼들과 이들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처음으로 중국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의 유명 힙합 뮤지션 카일이 ‘메이드 인 차이나’ 뮤직비디오를 본 뒤 남긴 코멘트입니다. 카일은 특히 하이어브라더스의 멤버 디지노우를 “중국의 비기(전설적 힙합 뮤지션)”라고 극찬하며 놀라움을 표시했는데요.

이 노래의 후렴구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가 반복됩니다.

“음양풍수(阴阳风水), 메이드 인 차이나
태극권에서 팔괘까지(从太极两仪到八卦阵), 메이드 인 차이나
만리장성(万里长城), 메이드 인 차이나
진시황부터 자금성까지(从秦始皇到紫禁城), 메이드 인 차이나“

이렇게 중국어와 영어를 반복해 노래하는 식이죠.

중국의 4인조 힙합 그룹 '하이어브라더스'의 대표곡 '메이드 인 차이나' 뮤직비디오의 일부 장면. [사진 유튜브]

중국의 4인조 힙합 그룹 '하이어브라더스'의 대표곡 '메이드 인 차이나' 뮤직비디오의 일부 장면. [사진 유튜브]

한눈에 보기에도 중국 색이 두드러집니다. 도입부에는 알람 시계, 칫솔과 치약, 도자기 그릇, 립밤과 우산이 전부 중국산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온종일 중국 제품을 쓴다는 내용의 가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하이어 브라더스의 멤버인 싸이피(25)는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중국을 혐오하면서도 중국산 제품을 쓴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현실을 꼬집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고 작심 발언을 하기도 했죠.

힙찔이(힙합 찌질이)의 반전 매력

한편 ‘동양적 촌스러움’을 내세워 일약 스타덤에 오른 래퍼도 있습니다. 2015년 16살의 나이로 혜성처럼 등장한 중국계 인도네시아 래퍼 브라이언 임마누엘(20)인데요. 그의 활동명은 ‘차이나’와 ‘니가(Nigga·흑인에 대한 멸칭)’를 합친 ‘리치 치가’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돈 많은 짱깨 깜둥이’ 정도일까요.

해외 유명 랩퍼들과 합께한 'Dat $tick'의 리믹스 버전 뮤직비디오. [사진 유튜브]

해외 유명 랩퍼들과 합께한 'Dat $tick'의 리믹스 버전 뮤직비디오. [사진 유튜브]

그는 3년 전 선보인 자신의 최대 히트곡 ‘댓스틱(Dat $tick)’의 뮤직비디오에서 단정한 폴로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어 힙합과는 거리가 먼 패션을 선보였습니다. 이 패션의 화룡점정은 ‘촌스러운 동양인’을 상징하는 검은색 허리 전대였는데요. 그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찌질한’ 동양인의 이미지를 드러내면서도, 이에 상충되는 중저음의 강한 랩으로 반전 매력을 뽐내며 유튜브 1억 1000만 뷰를 달성했습니다.

일본 태생의 일본·호주 혼혈인 래퍼 조지 밀러(27)는 SNS에서 팬들과 소통할 때 ‘초밥 쓰레기(Sushitrash)’라는 닉네임을 사용합니다. ‘라멘 끓이며 랩 하는 핑크 가이’, ‘다코야키 만들며 랩 하는 핑크 가이’등 B급 정서를 겨냥한 코믹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었죠. 하지만 그의 커리어는 ‘병맛’ 음악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앨범 ‘발라드 1’로 빌보드 힙합 차트 1위 자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동양계 뮤지션 중 최초로 힙합 종주국 최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겁니다.

팬들은 거침없는 풍자가 그의 매력 포인트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밀러는 2017년 발매한 ‘백인은 옳다’라는 제목의 곡에서 “예수님의 눈에는 모두가 평등해. 호모와 깜둥이만 빼고” 등의 가사를 노래하며 백인우월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를 자극적으로 풍자하기도 했죠.

인종차별 비판이냐, 민족주의의 부활이냐

하지만 이들의 음악이 인종차별에 맞서는 것에서 나아가 과도한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킨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비판의 배경에는 중국 공산당이 있습니다. 공산당은 사회 비판적인 힙합 음악을 검열해왔는데, 하이어브라더스만이 유독 예외가 되며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린 것이죠.

실제 중국 신문출판광전총국은 지난해 1월 힙합 뮤지션의 방송 출연을 금지했습니다. “공산당의 가치관에 위배된다”는 이유였죠. 피지원, 가이 등 중국의 힙합 뮤지션들이 이 검열 정책으로 인해 출연 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하이어 브라더스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습니다.

조지 밀러가 지난 1월 공개한 북미 투어 포스터. [사진 인스타그램]

조지 밀러가 지난 1월 공개한 북미 투어 포스터. [사진 인스타그램]

일각에서는 하이어브라더스가 중국의 인기 소셜 앱인 ‘위챗’과 중국 전통 명절 춘절 등을 가사에 녹이며 중화주의를 선전하는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공산당의 검열을 피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하이어 브라더스는 “(중국 문화에 대한 가사를 쓰는 것이)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은 아니다. 우리답게 노래할 뿐이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죠.

이런 해명에도 곱지 않은 시선이 뒤따랐습니다. 뉴스위크는 최근 하이어브라더스에 대한 기사에서 “이들은 당국의 응징이 두려워 검열에 관한 서방 언론의 질문을 회피한다”고 꼬집으며“이런 태도는 이들이 미국에서 기반을 넓혀가는 데 장애 요소가 될 것이다”는 쓴소리를 했고요.

또 동양인 래퍼들의 우스꽝스러운 ‘셀프 디스’가 오히려 기존의 편견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이들을 “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풍자할수록 ‘(동양인의) 찢어진 눈’에 대해 농담할 구실이 만들어진다”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지난해 12월 호주에서 공연 중인 리치 치가의 모습. [사진 인스타그램]

지난해 12월 호주에서 공연 중인 리치 치가의 모습. [사진 인스타그램]

이런 우려 때문일까요. ‘리치 치가’라는 발칙한 예명을 내세웠던 임마누엘은 지난해 1월 ‘리치 브라이언’으로 예명을 바꾸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팬들에게는 (인종차별적 예명을 썼던 것에 대해) “순진했고 실수를 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입장을 밝혔죠.

신랄한 풍자로 인기를 얻은 래퍼가 ‘얌전한’ 예명으로 개명하고, 저항 정신을 내세운 중국 힙합 그룹이 공산당의 비호를 받는 상황이 아이러니한데요.

동양인 래퍼들의 반란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본토 힙합계에 ‘메기 효과’를 불러일으킬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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