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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백신괴담 탓…미국 9년 전 퇴치한 홍역 되살아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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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백신 의무접종 반대 집회에서 한 여성이 2개월 된 아기를 안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백신 의무접종 반대 집회에서 한 여성이 2개월 된 아기를 안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를 통해 ‘백신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미 CNN은 최근 미국 내 만 2세 이하 백신 미접종 비율이 2001년 0.3%, 2011년 0.9%에서 2015년 1.3%로 증가 추세라고 보도했다. LA타임스는 LA 인근 클라크 카운티 전체 유치원생의 76.5%만 홍역 백신을 맞았다고 전했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치(95%)는 물론이고 80%선인 글로벌 평균마저 하회하는 수치다. 백신 공포·기피 현상을 뜻하는 ‘백신 U턴’, ‘안티 백신’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자폐증 연관설, 거짓 판명됐지만 #미국 영유아 미접종률 증가 추세 #전세계 감염자 1년새 50% 급증

지난해 이탈리아에서는 새로 집권한 포퓰리즘 정부가 아동 백신 의무접종을 유예하도록 결정, 논란을 빚었고 프랑스 극우 정당에서도 백신 접종 의무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삿바늘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1800년대부터 존재했는데, 1998년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세계적 학술지 ‘란셋(Lancet)’에 “홍역·볼거리·풍진을 막는 MMR 백신이 자폐증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공포가 증폭됐다. 반박 논문이 쏟아졌고 12년 뒤인 2010년, 저자 스스로 해당 논문이 “완전한 거짓(utterly false)”이라며 오류를 시인했지만 가설은 진실로 퍼져나갔다. 트럼프 대통령도 가설을 퍼뜨린 사람 중 한명이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집권 시절 트위터에 “자폐 비율이 치솟고 있는데 왜 오바마 행정부는 의사가 (주사로) 주입한 자폐증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느냐”고 적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12일 페이스북에서 폐쇄적으로 활동하는 ‘반백신주의자(anti-vaxxers)’들을 집중 조명했는데,이들은 “고용량 비타민A나 비타민C가 백신의 대안이 된다”는 주장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그 중 한 명이 미 콜로라도주에서 고용량 비타민C 온라인 사업자임을 밝혀냈다.

얼마전 한국에서도 자연주의 육아를 표방한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안예모(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 등 포털 사이트 카페 등을 통해 백신 미접종 바람이 불었다. 안아키는 2017년 5월 초 대한한의사협회 요청 등으로 인해 폐쇄됐고, 운영자였던 한의사 A씨는 이달 초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일부 부유국에서 나타나는 홍역 증가는 백신에 대한 잘못된 관념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홍역은 백신을 맞으면 95% 이상 예방이 된다. 미국은 2010년 홍역을 완전히 퇴치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2018년 전세계 홍역 감염자 수는 약 22만 9000명, 전년(15만4403명) 대비 50% 급증했다고 WHO는 보고했다. 공식 집계되지 않은 사례까지 합치면 실 감염자 수는 훨씬 더 많다는 얘기다.

WHO는 세계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10대 요인 중 하나로 ‘백신 괴담’을 꼽기도 했다. WHO는 “백신은 연 200만~300만명을 살리고 있으며 백신을 맞지 않아 사망하는 사람이 연 15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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