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알쓸신세] SNS 백신괴담에…19년 전 퇴치한 홍역 불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브라질에서 3세 어린이가 홍역 예방접종을 받고 있다. [AP]

지난해 브라질에서 3세 어린이가 홍역 예방접종을 받고 있다. [AP]

 헐리우드 배우 짐 캐리, 플레이보이지 모델 제니 맥카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세 사람의 공통점은 뭘까요. 한데 묶기 힘든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미국 내 ‘백신 공포’를 확산시킨 장본인들이라는 겁니다. 셋 모두 공개석상에서 “홍역 백신이 유아 자폐증 발병 확률을 높인다”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많은 미국인들이 백신의 효과 및 안전성에 의구심을 갖게 됐죠.

 CNN은 지난달 1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내 만 2세 이하 백신 미접종 비율이 2001년 0.3%, 2011년 0.9%에서 2015년 1.3%로 증가 추세라고 보도했습니다. 대다수가 백신을 접종하고 있긴 하지만, 백신을 불신하는 미국인 숫자가 이전보다 늘어난 것만은 분명합니다. LA타임스는 LA 인근 클라크 카운티 전체 유치원생의 76.5%만 홍역 백신을 맞았다고 전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치(95%)는 물론이고 80%선인 글로벌 평균마저 하회하는 수치입니다.

 ‘백신 U턴’, ‘안티 백신’ 등으로 불리는 백신 공포·기피 현상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해 이탈리아에서는 새로 집권한 포퓰리즘 정부가 아동 백신 의무접종을 유예하도록 결정해 큰 논란을 빚었습니다. 프랑스 극우 정당에서도 백신 접종 의무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방역 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 유럽 등지에서 일제히 백신 거부가 공론화된 겁니다.

 백신에 대한 불신은 왜 생겨났으며 누가 확대 재생산하는 걸까요. 소셜미디어(SNS) 발달과 함께 창궐한 백신 공포가 어떻게 세계를 떠돌고 있는지 [고보면 모있는 기한 계뉴스-알쓸신세]에서 알아봤습니다. 애당초 백신 공포를 낳은 근거의 실체부터 먼저 확인해보시죠.

포퓰리즘과 정부 불신이 가져온 백신 공포

지난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백신 의무접종 반대 집회에서 한 여성이 2개월짜리 아기를 안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백신 의무접종 반대 집회에서 한 여성이 2개월짜리 아기를 안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주삿바늘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역사적으로 1800년대부터 존재했습니다. 그러다 1998년 이를 뒷받침한다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세계적 학술지 ‘란셋(Lancet)’에 “홍역·볼거리·풍진을 막는 MMR 백신이 자폐증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죠. 당시 의학계는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반박 논문이 쏟아졌고 12년 뒤인 2010년, 저자 스스로 해당 논문이 “완전한 거짓(utterly false)”이라며 오류를 시인했습니다.

 문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가설을 진실로 믿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기성 질서, 제도권을 부정하려는 세력들이 잘못된 논리를 의도적으로 반복 인용하면서 대중의 공포를 키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2012년 트위터에 “자폐 비율이 치솟고 있는데 왜 오바마 행정부는 의사가 (주사로) 주입한 자폐증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느냐”고 적었습니다. 이 글은 순식간에 수천 건 리트윗(공유)되며 퍼졌지만 트럼프는 정작 본인이 백악관에 입성한 뒤엔 백신 논쟁에 입을 다물었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12일 페이스북에서 폐쇄적으로 활동하는 ‘반백신주의자(anti-vaxxers)’들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주로 “고용량 비타민A나 비타민C가 백신의 대안이 된다”는 주장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중 한 백신 거부 그룹 관리자인 ‘지론다(Gironda)’는 가디언이 취재를 시도하자 그룹을 비공개로 전환했습니다. 가디언은 지론다가 콜로라도주에서 고용량 비타민C 제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사업자라고 밝혔습니다.

 페이스북 백신 거부 운동을 연구한 호주 연구팀 나오미 스미스와 팀 그라함은 현대의 백신 거부 담화가 “통상의 음모론적 믿음이나 사유와 동일한 논리구조를 철저히 따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정부 제도와 미디어에 대한 도덕적 분노 및 계층 사회의 구조적 억압이 백신 거부를 만들어냈다”는 설명입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한 미국 오하이오주의 에단 린덴버거 가족 사례가 이를 입증합니다. 백신 거부자인 부모 밑에서 자란 에단은 “부모님은 백신이 일종의 정부 책략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온라인을 통한 백신 거부 확산은 최근 한국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됐습니다. 자연주의 육아를 표방한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안예모(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 등의 포털 사이트 카페가 횡행하면서 백신 미접종 바람이 불었죠. 현재 두 곳 모두 공식 활동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안아키는 2017년 5월 초 대한한의사협회 요청 등으로 인해 폐쇄됐습니다. 운영자였던 한의사 A씨는 이달 초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유행한 백신 거부 운동 포스터. '아이를 사랑한다면 주삿바늘로 약을 주입하지 말라. 안전한 백신은 없다'고 쓰여 있다. [소셜뉴스사이트 레딧(Reddit) 캡처]

미국에서 유행한 백신 거부 운동 포스터. '아이를 사랑한다면 주삿바늘로 약을 주입하지 말라. 안전한 백신은 없다'고 쓰여 있다. [소셜뉴스사이트 레딧(Reddit) 캡처]

 결과적으로 페이스북·트위터·유투브 등 SNS의 발달이 1800년대부터 있던 무분별한 백신 공포를 현대 사회에 확대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 것 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로마 라사피엔자 대학에서 의학사를 연구하는 그리그놀리오 교수는 “인터넷 발달로 사람들은 과학·기술 전문지식에 대한 필요를 잃어버린 채 스스로 직접 데이터에 접근, 분석할 수 있다는 오해를 가지게 됐다”고 꼬집었습니다.

 과학에 대한 불완전한 접근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합쳐져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가디언은 “의사나 과학자들은 비타민이 절대 백신을 대체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면서 “페이스북에 올라온 잘못된 정보가 아이들을 사망케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몇 년째 각국에서 이어진 홍역 유행 사태를 살펴볼까요.

전세계 홍역 감염자 50%↑…“백신이 답”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병원에 홍역·볼거리·풍진을 막는 MMR 백신이 놓여 있다. [AP]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병원에 홍역·볼거리·풍진을 막는 MMR 백신이 놓여 있다. [AP]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 전세계 홍역 감염자 수가 약 22만 9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합니다. 전년(15만4403명) 대비 50%가량 급증한 수치입니다. 공식 집계되지 않은 사례까지 합치면 실 감염자 수는 훨씬 더 커집니다. WHO는 집계치의 최대 10배 수준까지 감염자가 나왔다고 봅니다. 게다가 홍역 유행은 쉽게 가시지 않을 기세입니다. 미 질병예방대응본부(CDC)는 올들어서만 미국 내 10개 주에서 100건 넘는 홍역 판정이 나왔다고 발표했습니다.

 홍역은 이미 오래 전 인류가 정복했다고 알려진 질병입니다. 백신을 맞으면 95% 이상 예방이 됩니다. 미국은 2010년 홍역 퇴치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백신 기피가 번지면서 홍역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세계 홍역 사망자 수는 약 13만600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WHO는 “일부 부유한 나라에서 나타나는 홍역 증가는 백신에 대한 잘못된 관념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백신 괴담’은 WHO가 선정한 세계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10대 요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SNS에서 퍼지는 백신 괴담을 막기 위해서는 올바른 백신 정보를 투명하게 주고받기 위한 정부와 소비자의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막무가내로 접종을 권유해서는 상황을 개선할 수 없기 때문이죠. WHO는 “백신은 연 200만~300만명을 살리고 있으며 백신을 맞지 않아 사망하는 사람이 연 15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알쓸신세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