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힘 커져 … 이중 교섭 불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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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단일노조인 현대자동차 노조가 30일 산별노조 전환을 가결했다. 울산 현대자동차 노조사무실에서 조합원들이 노조의 산별 전환 찬반투표 개표 작업을 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현대.기아.대우자동차 노조를 비롯한 상당수 노조의 산업별노조 전환은 노동계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기업 단위였던 노조활동이 산별노조 단위로 바뀌는 것이다.

◆ 왜 산별노조로 가나=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산하 노조를 산별노조로 묶으려 애쓰는 것은 노조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1980년대만 해도 노조조직률은 20%를 웃돌았다. 그러나 노조의 비리와 무리한 파업 등으로 국민이 노조에 등을 돌리면서 지난해 조직률이 10.6%로 떨어졌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10%의 조직률로는 노동자의 요구를 정부나 재계에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년에 복수노조가 허용돼 한 기업에 여러 개의 노조가 생기면 개별 노조의 협상력은 더욱 약해진다.

그러나 산별노조가 출범하게 되면 단체교섭과 파업 등 단체행동이 모두 산별노조의 지침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진행된다. 개별 기업노조보다 강력한 교섭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강력한 힘은 민주노동당의 힘도 덩달아 높이는 작용을 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가 막강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장점은? =산별노조가 되면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대기업과 공동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예컨대 하청업체 노동자가 원청업체에서 일할 경우 이에 대한 임금보전을 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만약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직원 간의 임금격차가 줄어들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자연스럽게 거대 대기업의 횡포를 막는 역할도 한다. 실제로 그동안 현대차 노사의 임금협상이 끝나면 현대차는 어김없이 하청업체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해 왔다.

이는 하청업체 근로자의 임금삭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어 왔다. 우종호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은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현대차와 납품업체 종사자 간의 임금격차는 더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 단점은?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산별노조가 되면 개별 기업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며 "근로조건과 상관없는 정치파업이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가적인 사업에 대해 산별노조가 생산라인을 세우는'떼쓰기 파업'으로 정부와 재계에 맞설 경우 경제혼란도 생길 수 있다"고 경계했다. 산별노조체제에선 파업결정권이 산별노조 지도부에 있다. 지도부가 파업하라고 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파업해야 한다. 파업을 하지 않으면 노조에서 징계를 받는다. 또 사용자는 산별노조와 교섭을 한 뒤 개별사업장 단위에서 재교섭을 하는 등 이중.삼중의 교섭을 해야 한다.

산별노조가 기업규모에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임금과 근로조건을 요구할 경우도 문제다. 최재황 경총 정책본부장은 "합의된 사안을 이행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중소기업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며 "대기업 노조원들이 중소기업 노조원들에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나눠주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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