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대중여가수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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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소라· 히바리」를 잃은 일본열도가 슬픔에 잠겼다.
『이제 정말 소화시대는 끝났다. 우리와 함께 울고 웃던 나의 분신이 사라졌다…』는 분위기다.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가수 「미소라·히바리」(미공ひばり)는 일본대중의 우상이었다.
그의 부음을 듣고 법원으로, 집으로 몰러든 애도의 행렬은 줄을 이었고 TV·라디오·신문할 것 없이 모든 매스컴이 24·25일 연이틀간 특집을 통해 그의 육성, 그의 어록을 전했다.
시내 레코드상점마다 히바리전곡집이 불티나듯 팔렸고 서점가에는 서둘러 히바리코너를 만들기도 했다.
한 평론가는 추도사에서 이렇게 그의 심경을 전했다.
『「히마리」는 전후를 상징하는 대명사였다. 전전·전쟁기간동안 자신의 개성을 자신이 선택하지 못하고 천황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당연했지만 전후는 새로운 세계였다.
「미소라·히바리」는 바로 그 폐허에서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천황이 죽었을때 별로 실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 소화가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고 울먹이며 말하기도 했다.
한 대중가수의 힘이 이렇게도 큰 것인가. 미국의 「엘비스·프레슬리」가 죽었을 때, 영국의 「비틀스」가 갔을때도 굉장했다지만 이건 좀 유가 다르다. 「히바리」와 한동네에서 살았다는 요코하마(횡빈)의 한 시장가게주인은 『「히바리」의 목소리는 살아있는 희망이었습니다. 이제 나의 청춘도 끝난겁니다』고 비감한 표정을 지였다.
일본인에게 있어 「히바리」는 전후의 어두운 분위기를 서민적 건강으로 씻어나간 주역이었던 셈이다.
이제 풍요와 포식의 시대를 누리는 일본인들은 그의 죽음과 함께 그 어려웠던 과거를 실어보내는 굿거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외부인들에게는 일본인의 집단주의적인 기질로 받아들여지는 「히바리 현상」의 또다른 한편에는 죽은 사람이 유행가 가수나 천황, 스모씨름꾼, 기업가를 가리지 않고 그 분야의 정상이 누리는 권위를 그대로 인정하는 풍토가 일본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해 오늘의 일본을 만들어낸 밑거름이었음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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