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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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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님'의 문제라고 하지만 한용운의 시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에 온 지 석 달이 넘었다. 조금씩 우리말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특히 경어 사용이 어렵다. 어느 날 집에 걸려온 전화를 아내가 받았다. "선생님 계십니까"라는 상대방의 질문에 아내는 "예,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내 아내는 일본인이다. 일본어로는 지극히 당연한 표현이지만 이 나라에서는 어떨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계십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라고 하자니 나에 대한 높임말을 요구하는 꼴이 된다.

며칠 전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작곡가 윤이상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인터뷰를 옆에서 들은 한 젊은 지인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까 '윤이상 선생'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보다는 끝에 '님'자를 붙여서 선생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상치 못한 지적이었다. 나는 부끄러워졌다. "흠. 일본어 감각으로는 '선생'이라는 단어 속에 충분히 존경의 의미가 담겨 있거든. 답변이 실례가 됐다면 인터뷰를 다시 하는 게 좋을까?" 그 젊은 친구는 위로하듯이 말했다. "아니요. 선생님이 일본에서 오셨다는 것을 대다수 사람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 일로 다시 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이 지적이 고맙기는 했지만 그다지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감안해 다소 실례 되는 언행도 너그럽게 봐주고 있다는 뜻이니까.

일본의 TV 방송에는 '이상한 외국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어휘도 풍부하고, 비유도 자유자재다. 하지만 역시 발음이나 표현에는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남아 있다. 시청자들은 그 부자연스러움을 오락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이 나라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그 이상한 외국인과 똑같을까.

어느 비오는 날, 독일문화원에 볼 일이 있어 택시를 탔다. 행선지를 밝히자 운전기사는 백미러에 비친 나의 모습을 살피며 "손님, 독일 분이신가요"라고 물었다. 평소 "일본인이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내심 유쾌하지 않았는데, 이때만큼은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며칠이 지난 뒤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앞서 언급한 젊은 친구는 나와 이야기할 때 자신의 지도교수를 '님'자 없이 '선생'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높임말 사용과 관련한 그의 지적과 모순되는 게 아닌가. 재미있다 싶어 그 친구에게 물어보니 답변은 더욱 의외였다.

"맞습니다. 그것이 바른 높임말 사용법이니까요. 선생님은 제 지도교수보다 나이가 많으신데, 제가 지도교수의 호칭에 '님'을 붙이면 선생님에게 결례가 되는 거랍니다." 그랬구나….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나왔다. 이 이야기를 또 다른 지인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윤이상 정도의 대가에게 '님'자를 붙이면 '마르크스 선생님'이나 '김구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했다. 제3의 친구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는 "누구든 '씨'자를 붙여서 부르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은 선생님이고, 사장님이잖아. 이 권위주의가 사회의 개방과 발전을 저해하고 있어. 호칭부터 민주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 친구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내가 '호칭의 민주화'를 주창하더라도 사람들은 '이상한 외국인'의 재미있는 농담쯤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호칭의 민주화를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사회적 위계 구조를 복잡하게 반영하는 우리말 용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훗날 무너뜨리기 위해 집을 세우는 것 같은 일이다.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약력=일본 도쿄경제대 교수.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한국 체류 중. 저서에 '나의 서양미술순례' '난민과 국민 사이' 등이 있음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현대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