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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이 국가원수모독죄?…알고보니 1988년 삭제된 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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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고 말한데 대해 “국가원수모독죄”라고 비판했다. 과연 가능한 얘기일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임현동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임현동 기자

결론부터 말하면 국가원수모독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 원내대표의 발언에는 적용할 수 없는 법이다. 과거에 국가 원수를 모독하는 발언이나 출판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이 있기는 했다. 이른바 국가모독죄(國家冒瀆罪)라고 불리는 형법 104조 2의 법률이다. 이 조항은 1988년 삭제됐다. 1975년 3월 25일부터 1988년 12월 30일까지 존재했던 이 조항의 법정형은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다. 이 대표가 과거에 있었던 조항이 삭제된 사실을 착각했거나, 나 원내대표의 발언의 문제점을 강조하기 위해 비유적 표현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1988년 삭제된 국가모독죄 조항.[법제처 인터넷 홈페이지 캠처]

1988년 삭제된 국가모독죄 조항.[법제처 인터넷 홈페이지 캠처]

구법률의 내용은 ‘①내국인이 국외에서 대한민국 또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하거나 그에 관한 사실을 왜곡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안전ㆍ이익 또는 위신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②내국인이 외국인이나 외국단체 등을 이용하여 국내에서 전항의 행위를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이다. 이 법에서 ‘국가기관’으로 표현된 대상은 국가원수 즉 대통령을 의미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개헌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개헌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권위주의 시절 독재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국외 거주 한국인이 유신체제 및 박정희 대통령과 그 정부에 대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었다. 이 조항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폐지 논의가 시작돼 1988년 폐지됐다. 군사정부시절 국가원수모독죄 규정을 강력히 비판하던 이 대표가 30여년이 지난 지금 국가원수모독죄를 거론하는 아이러니칼한 상황이 된 것이다.

다만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형법상 명예훼손죄 또는 모욕죄 등이 성립하는지는 법적으로 논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엔 당사자인 문 대통령이 처벌을 원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또 그런 경우에도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는 헌법 45조의 면책특권이 나 원내대표의 방어막이 될 곳으로 보인다.

민주당에선 국회법(146조)의 모욕 금지 규정을 적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 조항은 ‘의원은 본회의나 위원회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한 발언을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정해져 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국회법 146조에 의거해서 나 원내대표를 윤리위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7회 임시회 본회의 나경원 자유한국당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에 항의를 하고 있다. [뉴스1]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7회 임시회 본회의 나경원 자유한국당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에 항의를 하고 있다. [뉴스1]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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