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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심해 사람도 못 알아본다"는 전두환 현재 상태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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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사면된 지 22년만에 5?18 관련 사자명예회손혐의로 광주지법에 피고인 신분으로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출석하고 있다. 2019.03.11 프리랜서 장정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사면된 지 22년만에 5?18 관련 사자명예회손혐의로 광주지법에 피고인 신분으로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출석하고 있다. 2019.03.11 프리랜서 장정필

11일 기소 10개월 만에 법정에 선 전두환(88)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8월과 올해 1월 두번의 재판에 알츠하이머병과 독감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전씨는 지난 8월 첫 재판을 하루 앞두고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아 지금까지 의료진이 처방한 약을 복용하고 있다. 최근 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방금 전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이라는 내용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서울시 38세금징수과 기동팀이 지방세 약 10억원을 체납한 전씨의 서울 연희동 가택수색을 시도했을 때 전씨 측은 “알츠하이머 증세가 심해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다”며 맞서기도 했다.
이날 전씨는 광주지법에 도착해 동행한 부인 이순자 여사의 부축을 받지 않고 스스로 걸어서 법정까지 이동했다. 걸음은 다소 느렸다. “발포 명령 부인하십니까”라는 취재진 질문에 “이거 왜 이래”라며 역정을 냈다.

그는 재판 내내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판사가 피고인 확인을 위해 “생년월일이 1931년 1월 18일 맞느냐”고 묻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듯 “어...재판장 말씀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라고 답했다. 그는 헤드폰을 낀 뒤에서야 답변을 이어갔다. 생년월일과 사는 곳과 등록기준지, 직업 등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간간히 부인과 대화를 나눌 때 외에는 재판 내내 눈을 감고 졸았다.
전문가들은 이날 드러난 모습으로는 알츠하이머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말하는 것만 봐서는 초기에 이상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기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든지 하면 초기 알츠하이머를 의심할 수 있지만 피로해도 비슷한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다. 중증으로 진행되면 질문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문서답을 한다거나, 대답 자체를 제대로 못하게 된다. 스스로 걷기도 어려워진다”라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약 10.2%에게서 발생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국내 환자는 72만4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좀 전에 생긴 일을 기억 못하는 인지 장애가 대표적 증상이다. 알츠하이머가 중증으로 진행하면 치매가 된다. 전씨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2013년 이후에도 공식 석상에 자주 등장했다. 2015년 10월 모교인 대구공고 체육대회에 참석해 참가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환호에 화답하기도 했다. 그는 이듬해 6월 경산에서 열린 대구공고 동문 골프대회와 만찬에 참석했다. 이튿날엔 경주에서 지인들과 골프를 쳤다.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가 재판을 받은 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나가고 있다 . 프리랜서 장정필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가 재판을 받은 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나가고 있다 . 프리랜서 장정필

 이번 재판의 쟁점인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발포 명령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2016년 5월 언론 인터뷰에서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그때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라고 말했다. 2017년 초 지인들과 함께한 신년회에서 그해 5월로 예정된 19대 대선을 거론하며 “이번 대통령은 경제를 잘 아는 사람이 나와서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가도 했다.
 2017년 4월에는 논란이 된 회고록을 출간했고, 5월 9일 대선 당일 투표장을 찾았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람마다 경과가 달라 일률적으로 말 할 수는 없다”며 “평균적으로 초기~후기까지 진행하는데 10년이 걸려 2013년 발병했다면 치료를 받았어도 지금쯤 중증으로 진행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008년 6월 3일 오후 강원도 춘천의 모 골프장을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 [연합뉴스]

사진은 지난 2008년 6월 3일 오후 강원도 춘천의 모 골프장을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전씨가 재판을 피하기 위해 환자인척 연기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최근 언론을 통해 그가 얼마전까지 부인 이순자 여사 등과 골프치는 모습이 목격됐고, 복잡한 골프 스코어 계산도 스스로 했다는 증언이 보도되면서 의혹이 증폭됐다.

임현국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알츠하이머의 핵심은 최근 기억력의 장애다. 옛 기억은 잘 하는데 방금 일어난 사건은 잃어버린다”라며 “알츠하이머 환자라 해도 골프는 칠 수 있다. 과거에 몸으로 익혔던 기억이기 때문에 가장 오래 간다”라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하지만 골프 스코어 계산은 단기 기억력의 영역이다. 만약 본인이 복잡한 암산을 했다는게 사실이라면 인지 장애가 없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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