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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 400채 값 고려청자… DDP서 간송을 만나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허유림의 미술로 가즈아(16)

미술 작품을 구매해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부를 일군 화상과 컬렉터들이 있다. 간송 전형필을 시작으로 박생광과 전혁림을 후원한 이영 미술관장 김이환·신영숙 부부, 조선대가의 작품과 한국 현대미술의 조화를 꿈꾸는 목포 유달산 자락의 성옥미술관 등이다. 이들은 미술품 구매와 후원이 돈이 많은 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자신을 찾아가는 일임을 보여준다. 이번 회부터 한국의 화상과 컬렉터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일제 때 문화재 지킴이이자 최고의 수집가

일제 강점기에 부모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청년이 있었다. 그는 상속 재산을 동원해 일본으로 반출되던 우리 문화재를 지켜냈다. 문화재 지킴이로 독립운동을 펼친 간송 전형필(1906~1962) 이야기다.

문화재 지킴이로 독립운동을 펼친 간송 전형필(1906~1962).[사진 간송미술관]

문화재 지킴이로 독립운동을 펼친 간송 전형필(1906~1962).[사진 간송미술관]

간송은 1906년 현재의 동대문 시장에 해당하는 배오개시장의 상권을 장악한 전계훈 증손자이자 전영기의 2남 4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간송은 당시 아들이 없던 숙부 전명기의 양자가 돼 99칸 집에서 친부모, 양부모, 양조부모까지 함께 살았다. 양가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아 큰 자산가가 된 배경이다.

그의 나이 아홉 살 때 조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열네살인 1919년 양부와 친형을 잃은 상황에서 양가에 남은 유일한 적손은 간송 뿐이었다. 장안 갑부의 막냇손자는 태어나서면서부터 금지옥엽으로 키워졌다. 이후 어의동 공립 보통학교와 휘문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에 진학한다.

나라 잃은 백성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전공하지만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1864∼1953)을 만나면서 민족의 혼과 얼을 지켜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간송’이라는 아호를 지어주며 수집가의 길로 안내한 사람이 바로 오세창이다. 간송을 우리 문화재 지킴이이면서 국내 최고의 수집가로 만든 장본인인 셈이다.

영국인 수집가로부터 고려청자 20점 인수

국보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사진 허유림]

국보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사진 허유림]

1900년대 초부터 일본인들의 손에 흘러 들어가거나 훼손될 위기에 처한 우리의 문화재를 구하려고 애쓴 일화는 수없이 많다. 예를 들면 간송은 1935년 일본인 골동품상 마에다 사이이치로부터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을 2만원에 사들였다. 당시 여덟 칸짜리 기와집 스무 채 값이었다.

간송은 즉석에서 마에다에게 현금으로 값을 치르고 매병을 손에 가져온 일화는 유명하다. 또 이듬해엔 영국인 수집가 존 개스비가 소장하던 고려청자 20점(개스비 컬렉션)을 인수했다. 당시 지불 금액은 자그마치 40만원, 서울의 기와집 400채를 사들일 수 있는 금액이었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간송은 40만원을 만들기 위해 집안 대대로 내려온 충남 공주 일대 땅 1만 마지기를 판다.

충청도에선 1마지기는 200평에 해당하므로 200만 평은 남산 면적의 두 배, 축구장 925개 크기에 달한다. ‘개스비의 컬렉션’으로 불리는 20 점의 작품 중 9점은 국보와 보물로 등록된다. 새끼를 품은 어미 원숭이를 형상화한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국보 제270호), 청자오리형연적(국보 제74호),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국보 제66호) 등이 이에 포함된다.

3·1 운동 100주년 간송 특별전 '대한콜랙숀'에서 한 관람객이 작품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속 작품은 국보 제270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뉴스1]

3·1 운동 100주년 간송 특별전 '대한콜랙숀'에서 한 관람객이 작품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속 작품은 국보 제270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뉴스1]

일제는 조선어 사용 금지와 조선 어학회 탄압 사건(1942년) 등 우리 민족 말살 정책을 가속화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43년 6월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간송은 귀한 물건은 제값을 치러야 한다며 당시 1만원을 주고 이를 사들였다. 그는 1000원에 달하는 수고비도 아끼지 않은 큰손이었다.

간송이 지켜낸 청자와 백자, 개츠비 컬렉션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디자인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을 만난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여는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이다. 국보 6점, 보물 8점 등 총 60여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린 3·1 운동 100주년 간송 특별전 '대한콜랙숀'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린 3·1 운동 100주년 간송 특별전 '대한콜랙숀'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전시명: 3·1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A Collection for Korea)'
전시장소: DDP배움터 디자인박물관
전시기간: 2018.01.04~2019.03.31
입장료: 성인 10,000원

허유림 RP' INSTITUTE. SEOUL 대표 & 아트 컨설턴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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