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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냐 그림이냐…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허유림의 미술로 가즈아(15)

세계 현대미술을 만날 수 있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의 모습. 우리가 미술을 알아야 하는 이유에는 미술이 가장 앞서서 오늘의 시각을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세계 현대미술을 만날 수 있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의 모습. 우리가 미술을 알아야 하는 이유에는 미술이 가장 앞서서 오늘의 시각을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왜 우리가 미술, 그중에서도 현대미술에 대해 알아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미술이 가장 앞서서 오늘의 시각을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미술도 컴퓨터처럼 빠른 속도로 변화를 거듭했다. 미술은 모든 예술 중 가장 날카롭게 미래를 예견하며 한발 앞서가는 장르다. 그것은 상상 혹은 현실의 세계를 논리적 절차 없이 본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미술 고유의 특성 때문이다.

인상파부터 작가 개인의 시각으로 표현

과거의 미술은 정치나 종교의 도구성으로 묘사를 했고, 르네상스 이후에 인간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과 인간에 대해 재현을 하게 되었다고 이미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사물을 자기의 시각과 의식으로 표현하게 된 것은 겨우 1세기 전 인상파부터였다. 이것이 모더니즘 시대를 거쳐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러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 미술이 보여주고 있는 경향은 바로 모색과 실험이다. 이 실험이 성공한 사람은 작가의 반열에 오르고 작품이 팔리며 미술사에 정식으로 편입된다. 작가는 그림을 가지고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다르다고 표현하는 그의 몸짓이 먹히고, 받아들여지고, 과연 그럴듯하다고 여겨질 때 작가는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르다는 주장은 어떻게 표현될까.

게르하르트 리히터. 그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해왔다. [사진 테이트 모던 제공]

게르하르트 리히터. 그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해왔다. [사진 테이트 모던 제공]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1932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는 회화가 재현의 개념에 사로잡힌 것에 의문을 갖고, 보이는 것이 사진처럼 보이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사물을 사진으로 찍어 사진에 나타난 것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겼다.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할 때 테두리를 흐리게 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

리히터는 드레스덴 미술학교와 요셉 보이스가 강의한 뒤셀도르프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1950년대에 사진작가와 무대 미술가를 포함해 여러 가지 예술적인 활동을 했다. 초기에는 프랑스의 앙포르멜과 미국의 잭슨 폴락 같은 추상표현주의 미술에 영향을 받았고, 1962년부터 사진에서 나온 이미지를 그린 ‘사진 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리히터는 추상미술의 극히 개인적인 형태로 돌아갔다. 그는 전후 시대에 지적 엄격함에 화가로서의 솜씨를 결합해, 세련되고 혁신적인 작품활동을 해온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는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초대를 받아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리히터의 미술 작품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구상적(Figurative), 둘째는 구성주의적 (Constructive), 셋째는 추상적 (Abstract) 경향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세 가지의 스타일을 시대에 따라 자유롭게 바꾸기도 하고 혼합하기도 했다.

베티(Betty), 1988, Catalogue Raisonne : 663-5, Oil on Canvas(왼쪽), 엘라(Ella), 2007, Catalogue Raisonne : 903-1, Oil on Canvas(오른쪽). ⓒGerhard Richter(저작권 게르하르트 리히터) [사진 게르하르트 리히터 홈페이지]

베티(Betty), 1988, Catalogue Raisonne : 663-5, Oil on Canvas(왼쪽), 엘라(Ella), 2007, Catalogue Raisonne : 903-1, Oil on Canvas(오른쪽). ⓒGerhard Richter(저작권 게르하르트 리히터) [사진 게르하르트 리히터 홈페이지]

작품 사진 중 베티는 1977년 자신의 딸인 베티를 스냅 사진으로 찍은 뒤에 그 사진을 1988년 다시 그린 것이다. 그리고 1991년에는 다시 카메라로 촬영해 사진을 만들었다. 사진과 그림 사이를 오가며 둘의 경계를 모호하게 했다.

관객은 당연히 사진인지 인쇄된 이미지인지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혼란을 의도적으로 유도했다. 왜냐하면 리히터는 우선 사진 이미지를 재현하면서도 사진과는 다른 회화로 표현하며 어떤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했다.

사진의 재현성 비웃는 ‘사진적 그림’

이러한 모색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적 그림(The photographic painting)’이라는 그만의 작가 특유의 기법을 고안해 냈다. 사진적 그림이란 위의 그림과 같이 거의 사진처럼 재현해 낸 것이지만 물감이 마르기 전에 마른 평 붓으로 형상의 외곽선을 문질러서 흐릿해진 부분을 만들었다.

이것은 마치 사진이 가진 확실성과 객관성에서 비켜나 사진의 단순한 재현성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하다. 그는 이렇게 회화만의 독특한 성격을 살려냈다. 이러한 그의 실험은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재현과 표현의 차이는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나타냈다.

또 리히터는 사진적 재현과 예술 사이의 경계도 보여주고 있다. 위의 그림은 서로 반사되는 판을 이용해 서로의 유기적인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불가의 연기론과 인과 관계를 미술작품으로도 표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실험은 한마디로 인간과 사물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고, 본다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 재복제를 하고 재 복제한 그림을 사진으로 다시 표현하는 기법도 선보였다. 마치 현실과 비현실 세계를 오가는 것을 묘사한 장자의 호접몽처럼.

허유림 RP' INSTITUTE. SEOUL 대표 & 아트 컨설턴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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