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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제’ 모티브된 피카소와의 성적 대화, 뭔 내용이기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허유림의 미술로 가즈아(13)

파리의 한 카페. 오십 대 중반의 남성이 자신의 애인이 곁에 있는데도 이제 갓 스물둘, 셋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모피로 만든 여자의 팔찌를 보며 “털을 덧댄 건 무엇이든 보기 좋죠” 라며 추파를 던졌고, 여자는 당황하지 않고 대꾸했다. “ 이 커피잔과 받침도 그럴까요.” 남자는 당대 최고 슈퍼스타 파블로 피카소였고, 여자는 한때 만레이의 조수로 일한 스위스 출신 예술가 메레 오펜하임이었다.

‘미투 운동’ 벌어졌을 법한 피카소의 말

당시 이들의 대화는 성적 암시를 나타내 요즘 같으면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됐을지 모른다. 피카소는 그의 명성만큼이나 수많은 여성 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오펜하임의 ‘모피로 감싼 잔에 입을 댄다’는 발언도 성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참정권 법안을 통과시킨 해가 미국과 영국이 각각 1920년, 1928년이란 사실을 고려하면 당시에는 성희롱, 혹은 성추행이라는 표현조차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프랑스는 1944년이 되어서야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한다.

오브제, 1936년작, 메레 오펜하임. 손으로 만지면 부드러운 털이 입에 들어가 끔찍하다. 관람자는 시각적으로 만족하면서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 공격적이고 불쾌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다. 오펜하임은 초현실주의 예술과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더 확장했다. [사진 flickr(저작자 Stephanie, https://flic.kr/p/6XsoSu)]

오브제, 1936년작, 메레 오펜하임. 손으로 만지면 부드러운 털이 입에 들어가 끔찍하다. 관람자는 시각적으로 만족하면서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 공격적이고 불쾌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다. 오펜하임은 초현실주의 예술과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더 확장했다. [사진 flickr(저작자 Stephanie, https://flic.kr/p/6XsoSu)]

1936년 오펜하임은 피카소와의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오브제’라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세상에 날리는 카운터 펀치였다. 그리고 이 작품은 페기 구겐하임이 1943년 뉴욕에서 문을 연 ‘금세기미술화랑’의 개관 전시회에 출품된다. 남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여성화가 31명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최초의 전시회였다. 당시 분위기는 어땠을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당시엔 불경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쩜 진보적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러나 세상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모여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1920년이 지나서야 여성에게 참정권을 줬고, 1940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여성 작가의 작품을 한곳에 모아 전시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미술은 지난 수 세기 동안 세상의 변화가 일어난 현장을 담아내고 있다.

여성의 권리 신장을 인식하기 이전 세상은 종교와 권력, 왕과 귀족으로부터 벗어나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이었다. 멍청하고 성질이 못된 사람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paysan(빼이장, 시골뜨기)’이라 불렸던 그들의 처지와 형편은 사람보다 짐승에 가까웠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를 미술은 지나치지 않았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직후 파리에 콜레라가 돌기 시작하자 한 화가가 이를 피해 파리 근교 바르비종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주한다. ‘이삭줍기’, ‘만종’,‘씨 뿌리는 사람’ 등 농부의 일상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한 장 프랑수아 밀레였다.

이삭 줍는 여인들, 1857년작, 장 프랑수아 밀레. [중앙포토]

이삭 줍는 여인들, 1857년작, 장 프랑수아 밀레. [중앙포토]

묵묵히 일하고 있는 세 명의 여인이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않다. 더욱이 추수 이후에 남겨진 것을 줍는 행위는 사회에서 가장 최하급의 일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그녀들의 어깨에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다. 또 그들 뒤로 수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진 밭은 어떠한가. 드넓고 장대한 하늘 아래 저물어가는 노을빛을 받아 금빛으로 물들어 있다. 이 작품을 접한 보수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가난을 선전하는 불손하고 정치적인 작품.”

그러나 밀레는 자신이 농부의 아들로서 본 것을 솔직하게 그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곤궁에 처한 노동자 계급의 삶을 표현함과 동시에 자신이 속한 시대를 인지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다. 실제 이 그림은 지금도 당시 사람들이 보지 못한 농부의 삶을 다양한 프레임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품 가격 결정하는 최상위 요소 ‘미술사적 가치’

사람에 대한 확장된 가치의 기록. 바로 이것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작품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상위 요소이자, 수많은 미술책이 어렵게 설명하고 있는 ‘미술사적 가치’다. 시대를 보여주고, 그 시대를 구성하는 이름 없는 이들의 삶과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과 그 안에서 파생된 인간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 미술사적 가치다. 이것은 그 안에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확장의 가치로 이어진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작품이 정말 수백억대의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러나 작품이 탄생하게 된 과정, 작가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 그가 속한 시대의 사회적 가치를 담았다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다시 이것이 단순한 기록이 아닌, 작가의 메시지를 던지는 미학적 가치를 확장해 사람을 향하는 미술사적 가치를 보여줄 때 시장은 해당 작품에 경제학 이론으론 설명할 수 없는 가격을 매긴다. 이는 앞으로 더욱 가속할 현상이다. 미술이 작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허유림 RP' INSTITUTE. SEOUL 대표 & 아트 컨설턴트 heryu1229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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