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의 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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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방세계의 강력한 비난과 잇단 제재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최근 북경사태관련자들을 잇달아 공개처형하는데 대해 서방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북경사태의 성격을 「민주화운동」으로 고정시킨 서방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는 민주화운동의 탄압이자 인권경시임에 틀림없다.
반면 중국집권층에서 본다면 공개처형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들은 정치범이 아닌 「형사범」이며 따라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일 것이다.
또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등소평) 은 최근 사태를 「반혁명폭란」이며 소수의 음모자들이 「공산당 영도를 부인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전복, 부르좌국가를 세우려고 했다」 고 규정하고 있다.
서방세계에서 본다면 이같은 중국당국의 태도는 독재권력의 유지를 위한 「피의 대학살」 을 합리화 시키려는 궤변에 불과할 것이라고 해석할 것이다.
그러나 등소평을 비롯한 중공당원로및 당권파들은 최근 시위가 체제전복을 기도한 것으로 확신할 가능성이 높은것으로 보인다.
등이 87년1월 자신의 심복이자 현직 당총서기였던 「후야오방」(호요방)에 이어 이번에 「자오쯔양」(조자양) 까지 치지않을수 없을 정도로 위기감을 느낀것도, 피의 대학살을 감행한후「중대한 승리」라고 축하한것도 중국지도층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읽을수 있는 사례들이다.
10대부터 붉은 아이로 자라나 2만5천리 장정, 국민당및 항일투쟁을 거치는 동안 수백만명의 인민들이 얼어죽고 굶어죽고 전사하는것을 체험하면서 공산국가를 세운 이들의 눈에 유혈사태 이후의 인명피해가 그렇게 「충격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서방세계에서 보면 초보적인 것에 불과한 민주와 권리의 주장이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사회주의체제 도전과 전복으로 비쳤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인도적인 측면과 도덕적인 기준에서 최근 빚어진 중국에서의 참혹한 인명살상은 비판해야 마땅하지만 중국과의 정치·경제적 교류에 노력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중국지도층의 성향을 염두에 두고 중국을 보는 눈을 갖춰야 할것이다.
중국문제를 다룰때는 서방의 가치기준이나 우리의 가치기준도 필요하지만 중국인들의 잣대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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