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다 기소하지, 10명은 애매해”…혼란스러운 판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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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보도된 이름 중 절반 넘게 기소가 안 됐다. 검찰의 기소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대한민국 판사 3000명 중에 10명이면 많은 거다. 밑에서 지시받은 판사들까지 다 집어넣자는 건가.”

5일 검찰 기소 대상이 된 10명의 전ㆍ현직 법관 명단을 두고 판사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애초 유력 기소 대상으로 지목된 고위 법관들은 기소에서 제외된 반면, 생각지 못한 이름이 포함됐다며 혼란스럽다는 눈치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 등장하는 이름이 100명에 달하는 데 비해 기소 범위가 좁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서울고법 판사는 “차한성 전 대법관과 권순일 대법관, 강형주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등은 법원행정처 핵심 보직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며 “수많은 (부당한) 보고와 지시 등이 거쳐갈 수밖에 없는 자리인데 기소에서 제외된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판사는 “직권남용 혐의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 검찰로선 파격보단 안전을 택했을 것”이라며 “고위 법관이라도 범죄 가담 정도가 낮다면 기소하지 않는 게 맞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기소 범위 적어”…불안감 감도는 법원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이 함께 쓰고 있는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전경. [서울고등법원 제공=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이 함께 쓰고 있는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전경. [서울고등법원 제공=연합뉴스]

성창호ㆍ조의연 부장판사(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 등 의혹 당시 비교적 직급이 낮았던 판사들의 기소를 두고도 말이 나왔다.

한 판사는 “성 부장판사의 경우 완전무결하다 말할 순 없지만 비슷한 정도로 연루된 다른 판사들이 기소 제외된 걸 고려하면 형평에 맞지 않는다“며 ”검찰이 정치권의 김경수 경남지사 판결 비판을 의식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다른 판사는 “검찰이 평소 법원의 영장 기각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불만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법원의 영장 발부와 기각 결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수사했으니 기소도 ‘영장 라인’에 집중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검찰이 기소 직후 ‘2차 추가 기소’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법원에는 불안감이 감돌았다. 한 부장판사는 “차라리 핵심 연루자들을 모두 기소했으면 몰라도 10명은 너무나 애매한 숫자”며 “다음 번에는 누가 ‘타깃’이 될 지 모르겠다. 검찰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던 판사들은 표정이 어두울 것”이라고 했다.

“재판 거래 연루 판사에게 재판 받겠나” 법원, 재판 배제 검토

대법원은 기소 대상에 오른 현직 판사들을 추가로 징계하거나, 재판업무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날 검찰은 10명의 기소 자료와 함께 의혹에 연루된 법관 66명의 비위자료를 대법원에 통보했다.

한 변호사는 ”다른 의혹도 아니고 재판 거래 등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는 판사들을 어떻게 믿고 재판받을 수 있겠느냐“며 ”우선 업무에서 배제한 다음에 징계 여부를 결정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앞서 성창호 부장판사가 댓글 조작 사건으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 구속하자 정치권 등에서 제기됐던 ‘재판 불복’ 사태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추가로 파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소장과 비위 자료 등을 검토해보고 연루된 법관 중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게 사법신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는 경우 재판 업무에서 제외하겠다”면서도 “범위나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사라ㆍ이수정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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