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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사설

북의 정치 놀음장된 김영남 가족 상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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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씨의 납치는 이 공작에 참가한 후 남파됐다가 검거된 간첩에 의해 확인된 사안이다. 16세의 어린 학생을 납치한 후 대남(對南)공작 교관으로 키운 것만 해도 단죄받아야 할 중범죄다. 그러나 북한정권은 그동안 입을 씻어 왔다. 납치를 해 놓고 피해자에게 이런 식의 변명을 하게 만드는 북한 정권의 비도덕성에 분노를 느낀다. 언제까지 이런 거짓말의 세계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불쌍하기조차 하다.

이런 참담한 지경에 이른 데에는 우리 정부의 책임도 크다. 이 정권은 납북자 문제를 제기하면 남북관계 개선에 장애가 된다며 손을 놓았다. 그러다 김씨가 일본에서 납북된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이라는 것을 일본 정부가 밝혀내자, 그때서야 마지못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건 논리는 '인도주의 정신 하에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다뤄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북한이 김씨 모자 상봉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됐다. 금강산이라는 북한 지역에서 상봉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 논리대로라면 북한이 이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어떤 식으로든지 예방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이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고, 항의할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김씨의 회견으로 납북자 문제 해결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과제인지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생전에 납북된 막내아들을 보고 싶다는 8순 노모의 염원은 저버릴 수 없다. 우리가 김씨 모자 상봉을 북한이 허용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렇다 하더라도 납북자 가족 상봉이 이렇게 북한의 선전선동의 장(場)이 되는 식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 납북된 게 확실한 남측 국민이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한다면 납북자 문제의 본질이 흐트러지는 것 아닌가. 따라서 정부가 보다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납치 사과를 다시 요구하라. 북측 지역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납북자들의 의사를 확인하는 등의 대안도 강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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