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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회담 실패 日탓한 유시민·정동영···"현실 모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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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담판 결렬 뒷전에 일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하노이 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가 나오고 나서 전 세계에서 제일 좋아한 사람이 일본 아베 신조 총리였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왼쪽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왼쪽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지난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자 범여권 인사들의 일본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미정상회담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며 일본을 거론했다. 정 대표는 “하노이 담판 결렬 뒷전에 일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며 “일본은 워싱턴 로비에 쏟는 인적 물적 자원 총량이 한국의 60배에 달한다. 하노이 외교 참사가 아베 정부의 쾌재로 이어지는 동북아 현실이야말로 냉엄한 국제정치의 속살”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의 지도자 중에 하노이 담판 실패에 환호한 사람은 아베 총리 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용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유시민 이사장도 2일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유시민의 알릴레오’ 9화 특집방송에서 “하노이 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가 나오고 나서 전 세계에서 제일 좋아한 사람이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아니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이사장은 “그(자민당) 각료들도 희색만면(喜色滿面)해 잘됐다고 하고, 3.1절에 그 장면을 보니 매우 화가 나더라”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제 정치의 현실을 잘 모르는 소리”라는 지적이 나왔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4일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일본 측 영향력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북정책에 대해선 미·일 간 간격이 벌어져 있다”고 일축했다. 조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결렬 후 ‘우방국과의 관계’를 언급한 것은 명분을 찾다 보니 넣은 것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에 철저하고 오히려 일본에 대한 배려가 없다. 그래서 아베 총리와 측근들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판단과 미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며 “이번에는 볼튼 등 강경파의 자료와 주장이 트럼프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심지어 볼튼이나 폼페이오 같은 사람들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제한적인데 아베 총리가 북미정상회담에 영향을 끼칠 공간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앞서 마이니치 신문 등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1일 “안이한 양보를 하지 않고 북한의 구체적 행동을 촉구해 가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일본은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을 전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도 북미정상회담 직후 기자들에게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지 못한 채 제재를 해제하는 등 가장 좋지 않은 결과가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고 말했다.

오히려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에 대해선 정 대표나 유 이사장이 비판한 일본보다는 미국의 야당인 민주당에서 더욱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2월 2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안한 작은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것도 주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환영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북한은 비핵화 없이 제재 해제를 원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것에서 걸어 나와 기쁘다”고 말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트럼프 대통령이 옳은 일을 했다”며 “완전한 비핵화에 못 미치는 협상은 단지 북한을 더 강하게 만들고 세계를 덜 안전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 이사장과 정 대표는 미국 민주당의 발언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았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 [사진=유튜브 방송캡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 [사진=유튜브 방송캡처]

한편 유 이사장과 정 대표는 아베 총리를 거론하며 국내 비판세력까지 ‘한 편’으로 묶었다. 이들은 “의외로 아베 총리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그런 분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참 아프다”(유 이사장), “우리 내부에도 아베 총리처럼 쾌재를 부르는 세력이 적지 않다는 게 비극”(정 대표)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과 기조에 비판하거나 반대하면 친일로 몰아버리겠다는 프레임 짜기”라며 “군사 정권이 비판 세력을 ‘친북·용공’으로 몰아 탄압한 것과 똑같아 놀라울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며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 잔재”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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