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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설레는 입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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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3월 새봄의 시작과 함께 오늘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초·중·고, 대학 등 많은 학교가 오늘 입학식을 하고 새 학기를 시작한다. 새로운 출발은 늘 설렘으로 다가온다. 특히 오늘 상급학교로 입학하는 학생들은 새로운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리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들떠 두근거리는 현상을 ‘설렘’이라고 표현한다. 설렘은 첫사랑이나 첫 출근 등에서도 일어난다. 이처럼 새로움에 동반되는 소중한 감정을 담은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설렘’이란 말을 사용할 때는 어려움을 겪는다. 대체로 ‘설렘’이 아니라 ‘설레임’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동사인 ‘설레다’ ‘설레이다’도 마찬가지다. ‘설레이다’로 쓰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설레이다’나 ‘설레임’도 맞는 표현일까? 동사에 ‘-이-’가 들어가면 피동의 뜻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들을 바른 표현으로 생각하기 쉽다. ‘보다’의 피동이 ‘보이다’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마음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지 누군가 움직이도록 하는 게 아니라는 측면에서 ‘설레이다’가 아니라 ‘설레다’를 기본형으로 하고 있다. 즉 새 출발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기대와 두근거림은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이므로 ‘설레다’를 기본형으로 삼았다. 따라서 ‘설레이다’는 틀린 말이 된다. 이를 명사형으로 만든 ‘설레임’ 역시 바른 표현이 아니다.

이와 비슷한 단어로는 ‘개다’와 ‘헤매다’가 있다. 이 역시 ‘-이-’가 붙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날씨가) 개이다’ ‘헤매이다’고 하면 틀린 말이 된다. 명사는 각각 ‘갬’과 ‘헤맴’이다.

‘설레다’ ‘설렘’이 맞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설레이다’ ‘설레임’이 많이 쓰이는 것은 운율 때문이기도 하다. ‘이’가 들어간 것이 훨씬 운율이 좋아 리드미컬하게 발음된다. 그래서 시나 노래 가사에서는 대부분 이렇게 쓰인다. 하지만 일반 글에서는 이렇게 써서는 안 된다. ‘설레이는 마음’이 아니라 ‘설레는  마음’이다. ‘설레임 가득한 입학식’은 ‘설렘 가득한 입학식’이라고 해야 한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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