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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결정 때 ‘기업 지불 능력’ 제외…소상공인들 반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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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경영계의 요구사항이던 ‘기업 지불능력’을 포함하려고 했던 계획을 철회했다. 노동계의 반발 때문이다. 그 대신 ‘고용에 미치는 영향’ 등의 기준을 새로 넣어 경영계를 배려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27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확정안’을 발표했다.

정부, 임금 결정체계 개편안 확정 #경제단체선 “반드시 포함시켜야” #구간설정위·결정위로 이원화 #공익위원 7명 중 4명은 국회 추천

앞선 지난달 7일, 고용부는 개편 초안을 발표하며 경영계의 요구에 따라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기업 지불능력’을 넣었다. 그런데 이후 “결정 기준으로서 객관성과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많이 나왔고, 결국 ‘기업 지불능력’을 빼는 대신 다른 결정 기준들을 통해 보완하기로 했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고용부는 보완책으로 개편 초안에 있던 ‘고용 수준’ 기준을 ‘고용에 미치는 영향’으로 강화했다. 또 개편 초안에 있던 ‘경제성장률 포함 경제 상황’ 기준을 그대로 가져왔다.

하지만 이 같은 보완 노력이 ‘기업 지불능력’의 빈자리를 채우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상공인 등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려면 일본 같은 국가들처럼 ‘기업 지불능력’ 기준을 넣는 게 필수적”이라며 “다른 대안들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더욱이 국민 전반의 여론은 ‘기업 지불능력’ 기준을 도입하자는 쪽이다. 실제로 고용부가 이번 발표 직전에 실시한 대국민 온라인 설문조사를 보면, ‘결정기준 보완을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지표(복수선택 가능)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임금 수준(응답비율 54.3%)’에 이어 두 번째로 ‘기업 지불능력(41.5%)’을 지목했다. 나머지는 ‘고용 수준’ ‘경제성장률’ ‘사회보장급여 현황’ ‘기타지표’다.

결정체계를 이원화하는 큰 틀은 그대로다. 정리해 보면,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 심의구간을 결정하는 ‘구간설정위원회’와 심의구간 내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결정위원회’로 이원화되는 게 골자다.

노·사·정이 추천한 전문가 위원 9명으로 구성되는 ‘구간설정위원회’는 최저임금을 심의할 때뿐만 아니라 연중 상시적으로 최저임금이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노·사·공익 위원 21명(각 7명)으로 이뤄진 ‘결정위원회’의 경우 위원 추천권은 노·사의 경우 법으로 인정된 노사단체들에 있다. 다만 청년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기업·중견기업·소상공인 대표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다. 공익위원 추천권은 정부(3명)와 국회(4명)가 나누어 가진다.

최태호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소모적인 논쟁들이 상당 부분 감소하고 ‘사실상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도 수그러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편안은 개선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아무리 제도를 좋게 바꿔도 근본적으로 최저임금 결정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균형감을 갖고 현장 중심으로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개편안에 대해 노사 모두 반발하고 있어 향후 적잖은 갈등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기업 지불능력은 임금수준 결정 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기업이 지불능력 이상으로 임금을 지급하게 되면 기업경영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중장기적으로 기업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정한 판단을 위해 구간설정위원회에도 노·사·공익(상임위원)을 각 1명씩 포함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한국노총·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을 위한 ‘개악안’이라며 반발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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