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종 "황교안 발언 실망"…윤여준 "이게 보수당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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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후보의 ‘태블릿 PC 조작’ 발언이 불러올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한국당과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커지고 있다.

15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OBS 경인TV 스튜디오에서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황교안후보 [국회사진기자단]

15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OBS 경인TV 스튜디오에서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황교안후보 [국회사진기자단]

나경원 원내대표는 24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전당대회가) 과거에 매몰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미래 비전을 놓고 토론하는 전당대회가 돼야 했는데 과거 이슈로 (진행)되는 게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당내에서는 황 전 총리의 발언이 ‘필요없는 무리수’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판사 출신의 3선인 여상규 의원은 “법원 판결까지 난 마당에 의미 없는 이야기를 했다”며 “법조인 출신이면 신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박성중 의원도 “중도층이 많은 수도권에서도 황 전 총리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이번 발언 때문에 실망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복당파 출신의 한 의원은 “여당의 실정과 김병준 비대위의 노력이 맞물리면서 간신히 탄핵 후유증이 치유되어 가는 참이었는데, 찬물을 끼얹은 셈”이라며 “황 후보가 대표가 되더라도 앞으로 박 전 대통령 탄핵과 태블릿 PC에 대한 입장에 대한 요구에 계속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자 MBN 토론회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를 앞둔 김진태(왼쪽부터), 오세훈, 황교안 당대표 후보자가 23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합동TV 토론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자 MBN 토론회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를 앞둔 김진태(왼쪽부터), 오세훈, 황교안 당대표 후보자가 23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합동TV 토론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감한 문제를 회피하거나 소극적으로 답해 ‘준비된 리더십’이라는 이미지에 손상을 입었다는 분석도 있다. 19일 3차 TV 토론에선 “(탄핵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돈 한 푼 받은 것도 인정되지 않았는데 과연 탄핵이 타당한 것인가”라고 말했지만, 이튿날 4차 TV 토론에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 다만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탄핵에 대해 입장을 OㆍX로 묻자 “‘세모’로 답하려 했는데 선택지가 없었다”며 애매한 입장을 보였다.

황교안 말말말

황교안 말말말

태블릿 PC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조작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21일 5차 TV토론)고 말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태블릿PC 조작 근거에 대해) 제 의견을 지난번 말씀 드렸다. 이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가 없다”(23일 6차 TV토론)고 얼버무렸다.

PK(부산ㆍ경남)의 한 의원은 “‘탄핵 세모’, ‘태블릿 PC 조작’ 같은 발언은 판단력이나 가치관에 대해 허점을 보인 셈”이라며 “전당대회를 넘어 대선까지 바라보는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이런 문제에 대한 입장 정도는 확실히 정하고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2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68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지지자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68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지지자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대표 후보는 “태블릿 PC가 조작 가능성이 없다는 판결은 국과수 감정까지 거친 판결인데, 특정한 성향의 분들한테 힘을 얻고 있는 가짜뉴스를 황 후보가 인용하고 편승한 것”이라며 “설령 황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추후에 이렇게 자질을 의심케 하는 행보는 없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보수 원로 그룹에서도 “몇 차례 설화에 휩쓸리는 것을 보면서 과연 황 전 총리가 지도자감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역임한 이원종 전 수석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왜 철 지난 ‘태블릿 PC’ 논란을 쟁점화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이 전 수석은 “전당대회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 비전을 갖고 보수의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놓고 토론해야 하는데 태블릿PC 같은 이야기로 쟁점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황 전 총리가 성공한 공무원일지는 몰라도 성공한 정치인이 되려면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를 앞둔 황교안 당대표 후보자가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합동TV 토론회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를 앞둔 황교안 당대표 후보자가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합동TV 토론회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자유한국당이) 제1야당인 것은 맞지만 지금 무슨 보수당이냐”며 “(지금 상황에 대해) 보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다”며 입을 닫았다.

이때문에 당초 이번 전당대회가 당 지지율을 30%대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가 많았지만, 황 후보가 중도층 확장에 실패하면서 ‘컨벤션 효과’가 크지 않을 것 같다는 내부 우려가 나온다.

유성운ㆍ성지원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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