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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 음악인가

성공하는 파격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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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일본 음악계는 “오랜 기다림”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달 13·14일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47)가 첫 일본 공연을 했다. 12일 열린 기자회견은 사진만 봐도 열기가 느껴진다. 쿠렌치스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일본 공연 소식에 각 나라 청중이 댓글을 달았다. “스웨덴엔 언제 와요?” “페루엔 안 오나요?” 청중의 한 사람으로, 쿠렌치스가 한국에 오면 어떤 공연장이든 매진시킬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야말로 음악 하나로 일으킨 돌풍이다. 쿠렌치스는 그리스 태생이고 러시아에서 공부한 뒤 정착한 지휘자다. 서유럽 한복판도 아니고 러시아 페름의 오페라 극장에서 예술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했으니 그렇게 화려한 출발이라고 볼 수도 없다. 젊은 연주자를 모아서 직접 만든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으니 악단의 인기에 올라탄 경우도 아니다.

화제가 된 건 오로지 음악 덕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11월에 나온 말러의 교향곡 음반을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교향곡 6번의 시작 부분이 놀랄 정도로 세차게 귀를 두드린다. 이어지는 현악기의 사운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선명하다. 익숙한 장면을 고해상도 화면으로 보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짧은 음표의 꼬리까지 발견하는 느낌이다.

2017년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음반부터 그랬다. 빨리 달려가지만 모든 부분이 튀어 올라왔다. 선배 지휘자들의 해석에 한톨도 기대지 않고 자신만만했다. 지나친 선명함이 옳지 않다는 생각은 자유더라도 재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음반으로 충격을 주기 시작한 쿠렌치스는 유럽 무대를 장악해나가고 있다. 잘츠부르크 음악제는 지난해 그에게 다섯 번의 무대에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맡겼다. 모두 매진됐고 올 여름엔 쿠렌치스가 개막 공연을 지휘한다.

파격적이고 새로운 쿠렌치스의 생각은 의외로 고전적이다. 빠른 연주 속도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내가 아니라 작곡가가 한 것”이라 답한다. 베토벤이 악보에 써놓은 빠르기를 지킬 뿐이라는 뜻이다. 그 빠르기는 수백년의 문화 차이, 속도 재는 기계의 변화와 같은 이유를 들며 바뀌어 연주됐다. 쿠렌치스는 베토벤 당시에 베토벤이 혁신적이었던 만큼의 새로움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놀라운 파격에 근거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는 악보와 역사, 작곡가의 뜻을 연구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쓴다고 했다.

듣자마자 알 수 있는 감각적 스타일이 연구와 고증 끝에 나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청중과 대중은 아무 새로움이나 따르지 않는다. 새로움의 수준을 본능적으로 감별해낸다. 지휘자 쿠렌치스는 파격의 좋은 예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