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는] 盤龜臺 암각화 보존 더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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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유곡인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에 가면 거북이가 앉아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바위인 반구대(盤龜臺) 한쪽 면에 신비한 그림들이 가득 새겨져 있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1971년 동국대 조사단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사슴 등의 동물과 이를 사냥하는 사람의 그림 2백90여개가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고고학자들은 세계적으로 암각화가 이처럼 완전한 형태로 한 군데 모여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신석기에서 청동기 시대에 걸쳐 새겨진 이 암각화를 곰곰이 살펴보면 마치 옛 사람들이 어떤 메시지를 후손에게 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반구대 암각화를 울산시와 문화재 당국이 어정쩡한 태도로 계속 방치해 빈축을 사고 있다. 울산시는 2000년 암각화 주변을 '선사유적공원'으로 개발하겠다며 국도 35호선에서 반구대 입구에 이르는 도로 확장공사를 추진했다.

유적공원으로 지정하고 도로를 넓혀야 관광버스들이 쉽게 진입하고 또 관광 명승지로 지정되어야 본격적인 암각화 보존대책도 마련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였다.

그러나 이 같은 시 입장에 울산환경운동연합.생명의 숲 등 지역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서자 울산시는 뒤늦게 서울대 석조문화재 보존과학회에 암각화의 보존방안 용역을 의뢰, 이달 초 보고회를 가졌다.

이 보고회에서 공개된 보존 방안은 세 가지다. 즉 ▶사연댐 수위를 50m 이하로 조절하는 방안▶반구대 앞을 흐르는 대곡천의 물길을 바꾸는 방안▶암각화 주변에 제방을 쌓아 차수벽을 설치하는 방안이다.

서울대 보존과학회 측은 현실적으로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셋째 방안을 최선책이라고 제시했다. 이에 의하면 반구대 암각화와 일정 거리를 두고 제방을 반월형으로 쌓아 물의 흐름을 차단한 후 관람객들이 제방까지 접근해 암각화를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 시민단체들은 인위적 토목공사를 통해 제방과 다리를 건설한다는 것은 천혜의 비경인 반구대 암각화 주변의 경관을 훼손하는 것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댐 수위를 조절하는 방안 외에 나머지는 모두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청계천 고가철거 등 자연생태의 복원이 시대적 추세인데 대곡천의 수위를 낮추는 데 필요한 예산 1천2백억원이 부담스럽다고 세계적 문화유산인 반구대 암각화의 원상복귀를 회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은 6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65년 박정희 정권이 울산공단 건설을 위한 공업용수와 식수를 조달하기 위해 사연댐을 건설하면서 암각화 전체가 물에 잠기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반구대 암각화는 일년 중 3~4개월만 제외하고는 물 속에 잠기게 되면서 마모와 부식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미 그림 자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거나 희미해지는 일이 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문화인이 반구대 암각화를 보고난 뒤 경주의 불교문화 유적 전체보다 한 폭의 바위 그림이 더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며 찬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울산시와 문화관광부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됐다.

국가지원을 통해 반구대 암각화를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고 영구 보존해야 한다. 이것이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긴 조상께 보답하는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울산시가 계획 중인 진입도로 확장과 주변의 공원화는 보존 방안 확정 후 추진해도 늦지 않다.

조형제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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