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토티, 히딩크 마법 깨고 4년 전 악몽 씻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페널티킥 결승골을 성공시킨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토티(右)가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입에 무는 독특한 골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카이저슬라우테른 로이터=연합뉴스]

'대전의 눈물'은 '카이저슬라우테른의 환희'로 바뀌었다. 프란체스코 토티(30.AS 로마)는 4년 전 한.일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당한 좌절을 그대로 되갚아 줬다.

27일(한국시간) 호주-이탈리아의 16강전이 벌어진 카이저슬라우테른 월드컵경기장. 전.후반 90분이 득점 없이 지나가고 추가시간 4분이 주어졌다. 3분57초가 지났다. 3초만 지나면 연장전에 들어가는 순간, 이탈리아가 페널티킥을 얻었다. 키커는 후반 교체 투입된 토티. 극도의 긴장감을 억누르고 토티가 오른발로 강하게 찬 볼은 골문 왼쪽 귀퉁이에 정확히 꽂혔다. 히딩크의 '마법'은 풀렸고, 이탈리아는 8강에 진출했다.

토티는 2002 월드컵 한국과의 16강전에서 뼈아픈 퇴장으로 1-2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했다. 6월 18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전반 22분 한 차례 옐로카드를 받은 토티는 연장 전반 13분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또다시 경고를 받아 퇴장당했다. 당시 한국 대표팀 트레이너 역할을 했던 최진한씨가 공개한 메모에 따르면 토티의 퇴장을 이끌어 낸 것은 히딩크 감독의 치밀한 작전이었다. 히딩크는 오른쪽 수비수 최진철을 불러 토티에게 거칠게 파울을 많이 하고 경고와 퇴장을 이끌어내라고 지시했다. 토티는 다혈질이니까 거친 파울을 많이 하면 자제력을 잃게 된다는 게 히딩크 감독의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4년 뒤 또다시 월드컵 16강에서 히딩크와 만난 토티는 이번엔 히딩크의 '덫'에 걸리지 않았다. 마르첼로 리피 이탈리아 감독은 토티를 선발에서 제외하는 강수를 두었다. 후반 6분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의 퇴장으로 위기에 몰리자 리피는 후반 29분 알레산드로 델피에로를 빼고 토티를 투입했다. 토티는 호주 수비수의 거친 플레이에도 흥분하지 않았고, 마지막에 온 페널티킥 찬스를 결승골로 연결했다.

토티는 "경기 내내 골을 넣는 것만 생각했다"며 "리피 감독이 경기 전에 왜 나를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했는지 설명했고, 나는 조용히 경기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각오를 다지기 위해 머리를 짧게 깎은 토티는 "호주전에서 우리는 체력으로나 정신력으로나 결승에 오를 만한 팀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며 결승 진출을 자신했다. 이탈리아는 스위스를 승부차기로 꺾고 올라온 우크라이나와 7월 1일 함부르크에서 8강전을 치른다.

카이저슬라우테른=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