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한 다섯 딸 키우느라 결혼도 안 한 김점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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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내 손을 꼭 잡으며 떨어지기 싫다는 아이들을 어떻게 보내…. 아이들 때문에 결혼은 엄두도 못냈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결혼도 하지 않고 여자아이 다섯 명을 입양해 친자식 못지 않게 정성껏 키운 김점순(72.경기도 이천시)할머니. 그래서 동네에선 그를 '아이들의 천사'라고 부른다. 할머니의 경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천사라는 말 대신 '김 계장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천에서 1남2녀의 막내로 태어나 경기도 이천군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복지아동계장까지 역임한 연유에서다. 할머니가 공직에 있을 당시만 해도 여성이 계장 자리까지 오르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1972년 첫 아이를 입양했다. 눈이 하얗게 온 어느 겨울날 누가 문을 두들겨 나가보니 한 여자아이가 울고 서 있었다고 한다. 다음날 할머니는 수소문 끝에 부모를 찾아 아이를 돌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아이 부모가 형제들이 너무 많아 키우기 힘들다며 맡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기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마흔이 넘어 아들 형제를 낳은 엄마가 됐다. 둘째와 셋째는 보육원에서 만났다. 군청 복지아동계장으로 일하며 업무차 보육원을 둘러보러 갔는데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가 어찌나 눈에 밟히던지 그냥 돌아설 수 없어 데려다 키우게 됐다고 했다.

넷째는 보육원이 아닌 이웃돕기 방문 과정에서 만났다. 그 아이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었는데 정에 굶주렸는지 헤어질 때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떨어지기 싫다고 해서 맡게 됐다.

할머니는 "길거리에서 처음 만난 막내는 1년은 씻지 못한 듯 꼴이 말이 아니었다"며 "그때 든 생각이 넷도 기르는데 다섯은 못 기르겠냐는 생각으로 막내를 입양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은 시집가서 딸을 낳고 몸이 불편한 할머니의 집에 자주 찾아와 집안 일을 거들고 있다고 한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한때 수녀가 되고 싶었다는 할머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들의 입양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으로 여기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 밥이나 먹였지 제대로 해준 것이 없다"면서 "자기들이 알아서 컸을 뿐이고 오히려 아이들 때문에 내 인생이 행복했다"며 주변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다.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신장이 급격하게 나빠져 요즘 일주일에 세번씩 투석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다섯 딸과 사위들의 병 간호, 손주들의 재롱에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경기도의 훌륭한 어머니'로 선정돼 다음달 11일 제 21회 경기도여성상을 받는다.

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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