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영난 이유로 상여금 제외 안돼"···노동계 손 든 대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통상임금 신의칙' 적용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사진은 대법원 전경. [뉴스1]

'통상임금 신의칙' 적용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사진은 대법원 전경. [뉴스1]

"회사가 어려우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해도 되나?"

대법원, 시영운수 임금 소송 '다시 심리하라' 결론 #"추가 법정수당 지급으로 '경영상 어려움' 단정 못해" #'통상임금 신의칙' 판결 기준 마련은 못해

이 같은 노사 간의 해묵은 논쟁에 대해 대법원이 일단 노동계의 손을 들어줬다. 기업이 '경영상 어려움'과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을 들어 임금 인상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통상임금 신의칙'에 대한 구체적 기준에 대해선 판단을 유보해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14일 인천 시영운수 소속 버스기사 박모 씨 등 2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사건의 상고심에서 버스회사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박씨 등은 2013년 3월 단체협약에서 정한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면서 그에 따라 연장근로수당을 다시 계산해 차액을 더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재판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임금을 더 주는 것이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기 때문에 노동자는 추가 임금을 청구할 수 없다는 '통상임금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2심 재판부는 "회사가 추가로 임금을 지급하면 예측하지 못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게 돼 신의칙에 반한다"며 버스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2011년 이후 노사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하지 않기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도 추가 임금 지급 의무를 지게 하는 것은 예측하지 못한 경영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영운수의 자본금이 2억 5000만원 수준인 반면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추가 부담해야 할 액수가 7억 6000여만원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강행규정보다 신의성실의 원칙을 우선해 적용할 것인지를 판단할 때는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하고자 하는 근로기준법 등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의 경영 상황을 내·외부의 여러 경제 및 사회적 사정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다"라며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경영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기업을 경영하는 주체는 '사용자'라는 것이다.

판단 근거에 대해선 "근로자들이 청구할 수 있는 법정수당은 4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며 "버스회사가 2009년 이후 5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한 데다 버스 준공영제의 적용을 받고 있어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다만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여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쟁점이 된 '신의칙' 기준에 대해선 판단을 유보했다.

대법원의 이날 선고로 '통상임금 신의칙' 기준 마련이 유보되며 아시아나항공과 현대중공업, 만도 등 관련 소송의 결론도 법원의 개별 판단을 기다리게 됐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법적인 명확한 기준이 제시돼 법적 안정성을 높이고 노사 간 불필요한 분쟁과 갈등 해소를 기대했다"며 "결과적으로 보면 원점으로 돌아가 건별로 판단하라고 다시 일선 법원에 판단 부담을 전가한 것 같아 다소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고정적이고 정기적으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돈은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통상임금 지급이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 신의칙을 적용해 소급분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를 붙여 논란이 계속돼 온 상태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