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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멈춰 버린 중국 민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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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국은 지난 20년간 급격한 자본주의 혁명을 경험했다. 경제는 여섯 배로 성장했고 세계 3위의 교역국이 됐다. 그렇다고 이런 수치를 근거 삼아 중국이 보다 민주적인 사회가 됐다고 생각하는 건 문제가 있다.

서구에서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 중산층과 부가 늘고, 나라가 점점 더 민주적이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중국은 이와 다르다. 중국 지도자들은 권력 유지의 굳은 의지가 있다. 또한 경제 발전이 자유 확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할 정도로 영리하다. 그 결과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향한 진전은 멈춘 상태다.

오히려 1980년대 중국 지도자들은 완만한 민주주의적 개혁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청사진을 그린 적이 있다. 입법 강화, 촌장 선거, 현대식 법체계 구축 등 주요 개혁은 이때 이뤄졌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 개혁이란 주제는 금기어가 됐다. 89년 6월 천안문 사태 이후 민주적 개혁은 시도되지 않았다.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대신 권위주의적 지배 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조직적 학습과 개조를 통해 일당 지배체제를 더욱 공고히 했다.

89년 이후 중국 공산당은 두 갈래 정책을 추구했다. 조직화된 정치적 반대파를 선별적으로 억압하면서 지식계급.전문직.기업가 등 새로운 사회주의 엘리트를 체제로 편입시켰다.

정부는 민중의 조직적인 저항을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강력한 법 집행 기관의 필요성을 느껴 인민무장경찰에 거액의 예산을 지원했다. 매년 중국에서 수만 건의 집단 시위가 일어나지만 전체 중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것은 모두 경찰의 활동 때문이다.

또 정보 혁명과 같은 새로운 정치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인력과 기술을 양성했다. 경찰 특수 조직 3만 개가 인터넷을 감시하고, 첨단 기술을 동원해 유해하거나 적대적인 해외 웹 사이트의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와 콘텐트 공급업자들로 하여금 반체제 인사를 억압하고 위법자들을 추적하는 데 협조하도록 만들었다. 유해한 정보 차단을 위한 정부 기관 합동 훈련도 했다.

중국은 소련 붕괴를 보면서 교훈을 얻었다. 사회주의 엘리트가 저항 그룹의 구심점이 되지 못하도록 체제로 편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사회적 기반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 도시 지식계급과 전문직에 물질적 혜택과 정치적 사명감을 줘 만족도를 높였다. 기업가들도 공산당에 가입할 수 있게 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끈 도시 지식계층은 당의 주된 적이었으나 오늘날은 서로 한편이 됐다. 지식계급은 당원과 관료가 돼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에 따라 지식계급은 더 이상 공산당 지배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게 됐다. 지식계급의 도움을 받지 못한 근로자.농민들은 방향타를 잃고 정치적으로 소외됐다. 89년 이후 17년간 작동해 온 공산당의 '당근과 채찍' 접근법이 향후 17년간도 효력을 발휘할지는 불확실하다. 엘리트들을 집권 체제로 편입시키는 데는 수적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포용 전략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선별적인 억압은 사회적 불만을 일시적으로 억누를 수 있으나 민중이 현 정치 체제를 부조리하고 부패하다고 인식하는 한 지배 엘리트에 대한 반감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불만이 누적돼 사태가 악화하면 소외된 민중은 폭발할 수 있다. 시위가 과거에는 지식계급과 학생과 연계됐지만 이제는 시위대에 정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합리적인 리더조차 없는 상황이다. 당이 현재의 성공을 자축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당분간은 시간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민주화를 향한 물결을 단지 지연시킨 것에 불과할 것이다.

민신페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정리=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