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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말 바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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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은행 스스로 느꼈을 땐 늦다. 부동산 하락에 대비해 위험관리를 강화해야 한다."(6월 23일)

부동산 시장과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시각이 불과 한 달 만에 '갈짓자 걸음'을 하고 있다. 담보대출에 큰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던 금감원이 갑자기 '담보대출 위기론'으로 돌아선 것이다.

금감원의 김중회 은행담당 부원장은 지난달 23일 라디오 방송에서 "부동산 가격이 50%까지 떨어져도 금융회사들이 (주택담보대출의) 담보비율을 유지할 수 있어 산술적으로 건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행권의 담보인정비율이 2002년의 70% 수준에서 최근 52.1%까지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4년 전엔 은행이 아파트 시세의 70%까지 과도하게 대출을 해줬지만 지금은 시세의 절반 수준만 대출하기 때문에 아파트값이 급락해도 충격을 견딜 수 있다는 말이었다.

김 부원장은 그러나 23일 기자간담회에서 돌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쏟아냈다. 그는 "담보대출이 연일 사상 최대로 증가하고 있다"며 "카드사태와 마찬가지로 은행이 부동산 하락으로 위기를 느꼈을 때는 이미 늦기 때문에 위험관리를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또 최근 은행에 담보대출을 줄이라고 직접 구두지시를 하는 '창구(窓口)지도'에 나서면서 관치 논란에 휘말렸다. 이에 대해 김 부원장은 "미국은 구두로 금융회사를 규제하며, 영국은 정도가 더 심하다"며 "우리는 공문으로 규제한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금감원이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것은 3.30 부동산대책 중 담보대출 규제의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담보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총부채상환율(DTI.연소득에 따라 대출액을 크게 낮춤)을 도입했는데도 4월 담보대출 증가액이 3조원을 넘자 금감원은 "제도가 본격 시행되기 전에 미리 대출받으려는 사람이 몰린 것"이라며 5월 이후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5월에도 담보대출 증가액이 3조원을 넘은 데 이어 이달에도 3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자 허겁지겁 '담보대출 위기론'을 내세우며 창구지도에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올 들어 대형 은행들의 몸집 불리기 경쟁이 담보대출의 급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지속적으로 감독을 강화해 왔다"고 설명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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