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학, 이래야 살아 남는다 ① 대전 한국정보통신대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한국의 실리콘 밸리라는 대전시 유성구 대덕연구단지. 경부고속도를 타고 대전 방향으로 달리다 호남고속도로 바꿔 탄 뒤 테크노밸리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면 연구소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840만 평 규모의 부지에 민간.정부 출연 연구소 90여 개와 벤처기업 140여 개가 몰려 있는 첨단기술의 메카다. 이 단지 안에는 유리로 된 9m 높이의 피라미드 뒤로 건물 6개 동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는 곳이 있다. 언뜻 보면 연구소 같다. 이곳이 '정보기술(IT) 사관학교'를 꿈꾸는 한국정보통신대학(ICU)이다.

1일 오전 6시10분 학교 기숙사 464호실.

"밤새 매달렸는데 데이터가 또 안 맞네…." 실망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ICU 전산과 2학년 장주희씨는 눈이 벌겋다. 장씨는 전날 오후 8시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밤을 새웠다. 기말 과제 마감시한이 12시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씨는 제주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고향에선 천재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ICU에선 수업 쫓아가기도 바쁘다.

그는 "수업.도서관.연구실.기숙사를 쳇바퀴 돌듯 오가며 하루 17시간씩 공부해도 어렵다"고 말했다.

장씨의 기숙사 룸메이트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민리(Minli.석사 2년)다. 그는 "ICU is crazy!(ICU는 미쳤어요!)"라며 "바빠서 주희와 1학기 내내 식사 한 번 같이 못했다"고 말했다.

ICU는 1998년 개교했다. 21세기 IT분야 최상급 엘리트를 길러내는 게 목표다. 정보통신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세웠다. ICU에는 '경쟁 바이러스'가 있다. 바로 학생들이다.

학부생이 405명, 석.박사과정이 539명에 불과하다. 학부생은 1년에 120명만 모집한다. 전국 성적 상위 1% 안에 들어야 입학자격이 주어지고 대신 학비가 없다. 전원 장학금에 전원 기숙사생활이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연간 예산은 516억원. 대부분 산학협력 연구프로젝트와 민간 기부금, 법인전입금으로 충당한다. 정통부는 95억원을 지원한다. 특히 광인터넷연구소와 모바일연구센터 등 국내 최다인 14개 IT연구소가 삼성전자.KT 등 민간기업과 연구소 등으로부터 따낸 프로젝트로 재정의 대부분을 댄다.

수업은 전 과목 모두 영어로 이뤄진다. 현순주 교수는 "여름학기가 필수여서 ICU의 1년 교육과정은 다른 대학보다 한 학기가 많지만 3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고 했다. 교수진은 80%가 IT 관련 국내외 유력 연구소 등에 근무한 실력자들이다. 교수 1인당 과학논문인용색인(SCI) 건수는 4.56건(2005년)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4.3건), 카네기멜론대(3.5건) 등 IT 명문대를 능가한다.

허운나 총장은 "우리 학생들은 'SKY(서울.고려.연세대) 대학이나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전통 명문대를 마다하고 여기에 왔다"며 "실력만으로 승부를 겨루는 치열한 경쟁의 세계를 학생들 스스로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 총장은 지난해 2월 삼성전자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조기 졸업생 전원을 우리 회사에 보내 달라"는 거였다.

'실력'에는 국경이 없다. ICU는 지난해 12월 미국 컴퓨팅학회가 주관한 '제30회 국제 대학생 프로그래밍대회'에서 인도 공과대에 이어 아시아 2위를 했다. 고인영 교수는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10명 정도여서 맞춤형 개인지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ICU는 지난해 세계 일곱 번째로 '무선전자 식별시스템 연구소(Auto-Id Lab)'를 설립했다. 연구의 선구자인 MIT가 ICU의 실력을 인정해 한국의 다른 우수대학을 제쳐 두고 파트너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ICU의 대학원생 539명 중 17%가 유학생이다. 인도.말레이시아.브라질.칠레.베트남 등에서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 한국에서 배우고, 경쟁하려고 이곳에 다닌다. 하노이공대를 졸업한 레비황(29)은 "세계 최고의 IT를 갖춘 한국과 ICU의 기술을 배우러 왔다"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학부에서도 외국인을 뽑을 계획이다.

대전=양영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