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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생기면 2~5년 내 극빈층, 기초수급비론 치료비도 못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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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질병의 악순환 고리 

서울 강서구 박모씨가 2층 집에서 나서고 있다. 그는 1998, 2001년 두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술에 빠져 살았다. 2012년 위암에 걸렸고, 소득이 사라지자 2016년 기초수급자가 됐다. 장진영 기자

서울 강서구 박모씨가 2층 집에서 나서고 있다. 그는 1998, 2001년 두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술에 빠져 살았다. 2012년 위암에 걸렸고, 소득이 사라지자 2016년 기초수급자가 됐다. 장진영 기자

지난달 18일 서울 강서구 기초수급자 박모(60)씨의 집을 찾아갔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60도 경사진 골목길을 15분 정도 걸었다.

2019 빈곤리포트 <하> #"1억빚 갚으려 10년간 식당일 #몸 망가져 이젠 일도 못해" #의료급여 대상 기준 완화 필요

"사업이 부도나서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그때 술을 정말 많이 마셨습니다. 그리고 위암 판정을 받았죠."

방안 곳곳에 약봉지가 널브러져 있다. 박씨는 한때 여행업을 크게 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났고, 전 재산을 밀어넣었다. 2001년 홈쇼핑 관련 사업을 시작했지만 또 부도를 맞았다. 괴로움을 달래려고 술에 빠져 살았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니 2012년 위암에 걸렸다. 5년에 걸쳐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 투병하면서 생활이 더 어려워졌고, 2016년 기초수급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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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노력 없이 살고자 한 것도 아닌데 부도가 나고, 술로 지내다 보니 사람이 폐인이 되더라고요." 기초생보제가 뭔지도 모르고 있는데 주변에서 알려줘 신청했다고 한다. 지금은 암이 거의 완치됐지만 다시 일하기엔 체력이 달린다. 코와 등에 큰 종양이 생겨 제거 수술을 두 차례 받았다. 기초수급자 보조금 65만원으로 집세·공과금·약값 등에 50만원을 쓴다. 순수 생활비는 15만원이다. 공과금이 조금씩 밀리고 있다. 그는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곤 연을 끊었다. 몇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그는 "일부러 아무도 모르는 동네에 와서 산다"고 말했다. 딸이 있지만 안 본 지 오래다. 아버지가 기초수급자인 줄 모른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박씨가 극빈층으로 떨어진 1차적 이유는 사업 실패다. 결정타는 암과 종양이다. 2012년 암에 걸린 지 4년 만에 기초수급자로 전락했다. 중앙일보는 14명의 극빈층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 중 1명을 제외하고는 13명이 질병을 앓고 있었다. 3명은 정신질환이다. 육체적 질병을 앓는 10명은 병이 생기고 나서 길게는 5년, 짧게는 2년 만에 기초수급자가 됐다. 4명은 비수급 빈곤층으로 떨어졌다.

질병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노동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젊어서 험한 일을 하다 보디 허리가 고장난 사람이 4명이다. 40, 50대 들어 허리에 탈이 나면서 막일을 하기 힘들어졌다. 무릎 신경통, 시력 상실 같은 병도 일을 못하게 만들었다. 빈곤층으로 지내거나 빈곤층으로 가까이 가면서 폭음하는 사람이 많다. 이로 인해 위장질환, 알코올 중독에 걸린 사람이 각각 2명이다. 기초수급자가 돼도 치료를 온전히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빈곤(사업 실패)→질환→기초수급자→질환 악화→빈곤의 악순환에 빠진다. 빈곤하지 않은 사람이 질환에 걸려 기초수급자나 비수급 빈곤층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치료를 받더라도 또 다른 병을 앓거나 우울감·무기력감 등을 겪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서울 마포구 정모(65)씨는 2008년 금융위기 때 의류업을 하다 부도가 났다. 사채를 써서 막으려 애썼지만 망했다. 사업을 정리했지만 1억원 넘게 빚을 졌다. 갚을 길이 없었다. 식당일을 해서 월 100만원 벌어서 1억원을 갚았는데도 아직 남았다. 정씨는 식당일을 하느라 오른팔 근육에 석회가 끼이는 석회화건염에 걸렸다. 팔이 자주 아파 식당일을 그만뒀다. 종전부터 앓아 온 왼쪽 눈 상태가 악화돼 거의 실명 상태가 됐다. 결국 지난해 기초수급자가 됐다.

경기도 김모(84)씨는 젊은 시절 전남에서 상경해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무릎 관절에 이상이 생긴 지 오래다. 눈에 백내장이 왔는지 시야가 뿌옇다.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간다. 생계비·의료비를 받기 위해 기초수급자 신청을 해봤지만 자식이 있다고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탈락했다. 기초연금 25만원, 주거급여 10만원으로 산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개 기초생활보장이라고 하면 생계비 중심으로 생각하는데, 의료급여에 주목해야 한다"며 "의료급여 대상자 선정 기준을 좀 더 완화해야만 '소득이 올라가도 병원비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여겨 열심히 일해 보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이승호·김태호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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