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가·음악·검도등 다재다능한 10선의원|나카소네에 충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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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일조약체결때 활약『「나카소네」 의 아류』 라는 비난을 면치못하면서도 「예산성립직후 퇴진」 이라는 「다케시타」(죽하) 전수상의 공언을 지키기위해 급조된 인상이 짙다.
때문에 10월말까지인 전임수 신임 「우노」 수상은 다재다능한 문인정치가로 알려져있다. 지난해 3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외상회담때 가수 조용필씨를 호텔로 초대, 『돌아와요 부산항에』 를 피아노로 반주하여 주위를 놀라게한 일도 있고 때때로 하모니카를 불어 딱딱해진 외교무대를 부드럽게 풀기도 한다.
음악에 대한 재능못지않게 유화, 단가 (하이쿠) 짓기, 향토역사연구, 검도 (5단) 등 다방면에 아마추어로서는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팔방미인」 이다.
일면 온화한 인상을 풍기나 일에 대해서는 철저한 완벽주의자. 돈냄새 풍기는 정치판에서 돈쓰는데 인색하여 보스기질이 결여돼있다는 평도 듣고있으나「나카소네」 (중증근) 파의 충실한 심부름꾼 역할을 해내 결국 당내 세력없이도 수상자리를 따냈다.
1922년 일본중부 교토(경도)에서 가까운 시가(자하)현 수산시 양조장집 아들로 태어나 고베 (신호) 상대를 중퇴했다.
종전직전 학도병으로 나갔다가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 포로가 되어 2년간 시베리아수용소생활을 경험, 이때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면서 자기나름의 사생관을 세웠다고 전한다.
귀국후 51년봄 자하현의원으로 당선, 정계에 발을 디뎠다.
현의부회장을 거쳐 58년 5월 중원선거에 도전했으나 초선에 실패. 「나카소네」씨의 도움으로 고「고노」 (하야일랑) 씨의 비서로 활약, 60년 11월 29회 총선에서 첫 당선됐다.
이후 「고노」 파가 「나카소네」파로 흡수되면서 줄곧 「나카소네」 파에 충성을 다해 현재10선의 관록을 갖고있다.
74년 「다나카」 (전중) 내각때 방위청장관으로 입각, 이후 과기처장관· 행정관리청장관· 통산상외상을 거쳐 관운이 좋은편.
당직으로는 「나카소네」 정권시대에 간사장대리를 맡아 이때 간사장이던 「다케시타」 와 호흡을 맞췄다.
한국과는 한일의원연맹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접촉이 잦았으며 한일조약체결당시 「고노」 씨의 밀사로 여러차례 한국을 다녀간 인연이 있다.
【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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