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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체크]김주영 쌤과 달리 '공부해서 남 줘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윤석만의 에듀체크]SKY캐슬은 현실일까⑧(완료)

“우리 이제 수능으로 정정당당하게 다시 해보자.”

드라마 SKY캐슬에서 주인공 강준상(정준호 역)이 자퇴를 앞둔 딸 예서에게 말합니다. 입시 코디 김주영(김서형 역)의 비리 사실을 폭로하면서 그 동안 잘못을 방관해 왔던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죠. 예서도 결정을 내리기까지 쉽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굳건하게 그 길을 함께 가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때까지 예서는 김주영이 짠 입시 스케줄대로 움직였습니다. 그가 제공한 예상 문제집을 풀어 중간·기말고사 만점을 받았고, 코디가 시키는 대로 봉사활동하고 스펙을 쌓았습니다.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준비해온 예서 입장에서 자퇴 결정은 아예 처음부터 다시 입시를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죠.

김주영과의 갈등 끝에 목숨을 잃은 예서의 친구 혜나는 처음부터 이런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혼자 열심히 공부하는 자신과 모든 것을 김주영이 설계한 대로 따라 움직이는 예서의 상황이 불공평하다는 것이었죠. 결국 혜나는 김주영이 사전에 학교 시험지를 빼돌린 문제를 바로잡으려 하다 비극을 맞이합니다.

SKY캐슬이 방영된 이후 수시와 학종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미 지난해 국가교육회의가 주도한 ‘대입 공론화’ 때부터 수시·학종을 줄이고 정시·수능을 늘리자는 의견이 많았죠. 핵심 이유는 학종이 불공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종은 부모와 교사, 사교육업체의 개입 여지가 크므로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수능은 어찌 됐든 학생 본인이 시험을 보는 것이므로 공정하다고 설명합니다. 또 수능은 인터넷강의처럼 저렴한 사교육이 많기 때문에 양극화 문제도 적다고 하죠. 하지만 수능이라고 해서 사교육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수능 역시 학원과 과외로 훈련된 학생일수록 유리하죠. 무엇보다 새로운 미래역량을 요구하는 4차 혁명시대에 수능과 같은 지필고사로 학생을 선발하는 게 옳은지 의문입니다.

[윤석만의 에듀체크]SKY캐슬은 현실일까

①'SKY캐슬'의 입시 코디···70%는 진실
②고액 입시코칭 정치인·장관 아빠 줄서
③SKY 합격자에 고소득층 자녀 많아
④교실=전쟁터, 90%는 들러리 만들어
⑤자녀 입시 앞에 내로남불 지식인 많아
⑥강준상처럼 성공한 현실 속 마마보이들
⑦미국판 SKY캐슬 “하버드 가면 백만불”
⑧김주영과 달리 '공부해서 남 주는 이유' 

그렇다면 도대체 공정한 입시란 무엇일까요. 우리 교육의 목적과 방법은 어때야 할까요. 오늘 ‘에듀체크’는 입시의 공정성이란 무엇인지, 21세기 교육의 방향은 어떤 것인지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와 함께 살펴봅니다. 2008~2012년 광주교대 총장을 지낸 그는 현재 한국교원교육학회 회장으로 국내 교육학 분야의 권위자입니다. EBS 교육대토론의 진행자이면서 얼마 전 ‘실력의 배신’이라는 책으로 미래 교육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습니다.

- 어떤 입시든 사교육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나마 수능이 학종보다 공정하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공정한 경쟁’은 개인이 갖고 있는 현재의 실력 이외의 다른 요인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교육을 금하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 이외의 어떤 요인도 영향을 못 미치게 한다면 그게 과연 공정한 것일까. 이는 재능과 집념을 타고난 사람들의 관점에서만 공정한 것은 아닐까.”

-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경쟁하는 게 꼭 공정하지만은 않다는 주장은 선뜻 이해가 안 된다.
“영화 ‘보헤미란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를 보자. 그가 연습을 통해 3옥타브 음역대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가수가 된 게 아니다. 신은 외모와 성격뿐만이 아니라 재능과 집념의 수준에도 차이를 뒀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노력해도 실력이 향상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해도 잘 늘지 않는 학생도 있다. 타고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결과만 놓고 보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 그 말은 누구나 타고난 재능이 다른데, ‘공부’ 하나만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뜻인가.
“‘보헤미란 랩소디’를 예로 든 것은 ‘노력 만능론’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재능과 집념을 타고나지 않은 입장에서 학습의 결과만 갖고 ‘한 줄 세우기’로 선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사진 영화 캡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사진 영화 캡처]

 박 교수는 최근 펴낸 ‘실력의 배신’이라는 책에서 모든 것을 실력으로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실력주의 사회는 대학 진학과 취업, 사회적 재화의 배분까지 모두 개인의 실력을 바탕으로 나누는 것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회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오직 실력만으로 배분하는 게 공정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양한 사회적 작용의 결과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지적한다.

- 실력주의 사회가 ‘승자의 이데올로기’라는 말로 들린다.
“개인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개인의 노력이 실력을 형성하고, 또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결과물을 얻는데 중요하긴 하지만 그 외의 다른 영향 요인도 많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 타고난 능력과 집념마저도 우연히 주어진 것이지, 스스로의 의지로 얻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입시에서는 어쨌든 실력을 평가해야 하고 학교는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입시를 치르는 것이 교육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원래 공교육은 공동체의 구성원인 올바른 시민을 양성하는 게 가장 큰 목표다. 학교가 대입준비기관이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압축 성장과 빠른 근대화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공교육이 입시기관 역할을 동시에 해왔을 뿐이다.”

- 사실 미국과 영국 등 다른 나라들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역할이 선명하게 다르다.
“피츠버그에 있는 윈체스터 고교는 학교 홍보물 표지에 ‘대학 입문’이라고 쓰여 있다. 졸업생 다수가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게 중요한 홍보 내용이다.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무상인 공립이 아니라 값비싼 사립에 보낸다. 미국의 공립학교 대부분은 대입준비기관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 자칫하면 이 주장은 돈 있는 사람만 좋은 대학 가라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런 의미는 전혀 아니다. 한국의 공립학교가 미국의 사립학교처럼 입시기관으로서의 역할까지 겸해 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이다. 하지만 사교육이 점점 커지면서 공교육에서 입시기관의 역할은 많이 약화됐다.”

 사실 우리에겐 공·사립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 사립고교라 해도 공립고교와 똑같은 공교육의 범주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짧은 시간에 공교육이 확대되면서 사립도 공립과 같은 역할을 했다. 반면 영어권 국가엔 사립과 공립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들 나라에는 한국과 같은 유형의 학원이 발달해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사립학교가 우리의 사교육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미래의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지금 같은 실력주의 사회가 계속되면 빈부갈등과 양극화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사회적인 성공이 자기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게 아니란 걸 깨닫게 해야 한다. 우연히 태어나보니 능력과 집념을 타고났고, 부모를 잘 만나 운도 좋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얻은 성취를 타인과 나눌 수 있고, 그 자체를 행복이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한다.”

- 개인이 획득한 사회적 성취를 자기만의 것으로 생각하지 말자는 뜻인가.
“그렇다. 성공을 오롯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각 개인이 실력을 쌓아 사회적 부를 이뤘을 때 그것이 자기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즉 의지적 노력의 결실이 아닌 부분, 타고난 것과 운의 작용에 의한 부분은 세상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 개인의 성취와 자아실현, 공공의 선과 이익의 교집합이 넓어져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학교와 대학은 이런 ‘신실력주의’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야 한다. 명문대에서 학생을 뽑을 때도 실력뿐만이 아니라, 얼마나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왔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래야만 무한경쟁과 빈부격차의 심화, 분노와 불신에 빠진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실제로 세계 여러 나라의 명문대학들은 학생을 선발할 때 박 교수가 강조한 부분을 비중 있게 살펴본다. 조우석 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입학사정위원에 따르면 몇 년 전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었다. 최종 면접에 스펙이 매우 뛰어난 홍콩 출신의 A와 네팔 출신의 평범한 B가 올라왔다. 그런데 무난히 합격이 예상됐던 A는 면접관들로부터 ‘arrogant(교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떨어졌다. 반면 B는 다소 부족한 스펙에도 “교육환경이 열악한 네팔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진심이 전해져 합격했다.

 보통 우리는 학교, 또는 가정에서 ‘공부해서 남주냐?’는 말을 듣고 자랐다. 하지만 하버드의 교육철학은 ‘공부해서 남 주자’이다. 하버드 학생들의 주 출입구 중 하나인 덱스터 게이트엔 앞뒤로 두 개의 문구가 쓰여 있다. 들어올 때는 ‘enter to grow in wisdom’, 나갈 때는 ‘depart to serve better thy country and thy kind’다. ‘대학에 와서는 지혜를 배우고, 졸업한 뒤엔 더 나은 세상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인성이 부족해도 공부만 잘 하면 가정과 학교에서 높이 떠받들어진다. 회사에서 실적과 성과가 좋은 사람은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을 듣지 못해도 승승장구한다. 드라마에서 처음 묘사된 강준상과 그의 딸 예서의 캐릭터도 이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결말에서 이들은 무엇이 성공한 삶인지 스스로 깨닫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SKY캐슬이 던진 질문은 ‘교육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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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는

2005년부터 기자 생활을 했다.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출입처를 거치며 시민·미래·인문 분야의 보도에 집중했다. 4차 혁명시대엔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란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 다가올 미래를 인문의 관점에서 통찰한 '인간혁명의 시대'(2018 세종도서) 등을 썼다. 유네스코가 15년마다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 행사에서 세계시민교육을 주제로 기조발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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