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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폐지 외친 지식인들 자녀 입시에선 내로남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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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에듀체크]SKY캐슬은 현실일까⑤

 역대 종편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jtbc 인기 드라마 'SKY캐슬'은 부와 명예, 권력을 모두 거머쥔 상위 0.1% 부모들의 자녀교육 이야기입니다. 의사·변호사 등 소위 ‘잘 나가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각종 사교육을 활용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죠. 이들의 지상 최대 목표는 서울대 합격입니다.

드라마에서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인 황치영(최원영 역)은 시골에 살다 서울로 이사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아들 우주가 강남 최고의 명문 자사고에 입학했기 때문이죠. 극중에서 황치영과 그의 아내 이수임(이태란 역)은 자녀 입시를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기존의 SKY캐슬 주민들과 대비되며 건강한 상식을 지닌 인물로 묘사됩니다.

휴머니스트로 묘사되는 황치영 부부는 주민들의 잘못된 행동에 쓴 소리하고, 지나친 교육열로 자녀를 입시지옥으로 내모는 현실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우주가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은 다른 부모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굳이 서울의 명문 자사고에 지원하고, 아들을 위해 이사까지 한 것은 그 만큼 입시에 관심이 크다는 것이니까요.

이처럼 교육에 대한 소신과 철학이 뚜렷한 사람도 막상 자기 자녀의 일이 되면 평소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기도 합니다. 외고·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녀들은 해당 학교에 보낸 인사들의 ‘내로남불’이 대표적이죠.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들의 주장에서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오늘 ‘에듀체크’는 SKY캐슬 드라마에 묘사된 사회지도층의 입시 현실은 어떤지 따져봅니다. 특히 교수로 대표되는 지식인 사회의 자녀교육 실태를 김중백 경희대 교수와 함께 짚어 봅니다. UT(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경희대 교육혁신사업단장과 고등교육연구센터장을 겸임하며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을 심도 있게 연구해온 전문가입니다.

윤석만의 에듀체크

①'SKY캐슬'의 입시 코디···70%는 진실
②고액 입시코칭 정치인·장관 아빠 줄서
③SKY 합격자에 고소득층 자녀 많아
④교실=전쟁터, 90%는 들러리 만들어
⑤자녀 입시 앞에 내로남불 지식인 많아

- 드라마처럼 자녀 입시에 ‘올인’ 하는 교수들이 많나.
“강남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은 여럿 봤다. 이름만 들으면 누군지 다 아는 진보진영의 유명한 교수가 있는데, 몇 년 전 강북 쪽에 살다가 자녀가 고교 입학할 때쯤 강남으로 이사했다. 유명 사립고에 보내더니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서울대에 합격시켰다. 말로는 강남을 비판해도 막상 자식 일이 되면 다른 행동을 한다.”

- 외고·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면서 정작 자기 자녀들은 그곳을 졸업시킨 것과 비슷하다.

“‘유체이탈’이다. 공적인 자기주장과 사적인 행동 사이에서 모순이 발생하는 거다. 다양한 교육 수요가 있는 만큼 다원화 된 사회에선 여러 형태의 학교를 존중해줘야 한다. 만약 외고·자사고가 없어지면 누가 제일 먼저 피해를 볼까. 비강남 지역의 아이들이다. 정책의 의도와 달리 예기치 못한 부정적인 폐해가 나타날 거다.”

- 왜 그런가.

“생각해보자. 외고·자사고엔 보통 중학교 때 우수한 아이들이 많이 간다. 만약 그 아이들이 전부 일반고에 진학하면 어떨까. 기존에 상위권 있던 아이들이 밀릴 수밖에 없다. 또 좋은 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욕구는 언제나 존재한다. 결국 강남 학교들로 아이들이 몰릴 거다. 그러면 또 다시 ‘8학군’ 부활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실제로 외고·자사고 폐지를 주장했던 인사들 중엔 자녀를 해당 학교에 보냈거나 강남 명문고를 졸업시킨 사례가 많다. 자녀가 외고를 졸업한 조국 청와대 수석이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이 대표적이다. 진보교육감 1세대인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2010년 아들이 외고 재학 당시에 외고에 부정적인 주장을 해 논란이 됐다. 또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도 세 딸 모두 강남의 초·중·고교를 졸업시켰다.

- 지난해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강남’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본인은 강남 정도로 만족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반 국민 입장에선 기분이 나쁘다. 장 전 실장은 좋은 배경에 권력까지 갖고 있던 사람이기 때문에 서민의 현실을 모르는 거다. ‘내로남불’은 소통 감수성이 없기 때문에 벌어진다.”

- 교육이 더 이상 ‘희망 사다리’일 수 있을까.

“그런 프레임 자체가 위험하다. 정치인들이 교육을 ‘희망 사다리’라는 말로 현혹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계층 상승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거다. 누군가 올라가면 내려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누군가를 끌어내리는 게 쉽지 않다. 또 계층 상승이 교육의 유일한 목적이라면 줄 세우기는 필연적이다. 모든 교육이 입시로 귀결되는 현상을 낳기 때문에 이런 프레임은 위험하다.”

- 하지만 누구나 더 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고,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교육 아닌가.

“과거에는 가능했다. 그 때는 모두가 못 살고, 주변이 온통 개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입시제도만 해도 부모의 지력과 재력이 학생의 성적을 좌우한다. 특히 ‘용이 되는 것’은 입시와 같은 ‘한판 승부’로 결정돼선 안 된다. 한 번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해서, 또 고시에 합격했다고 해서 평생이 보장되는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드라마 'SKY캐슬'에선 로스쿨 교수가 자녀들의 자기소개서나 논술을 대신 써준다. 본인이 직접 아이들과 독서토론 활동을 하며 보고서도 작성한다. 학생이 직접 무언가를 하기보다 교수인 부모가 직접 대신 해주는 장면이 많다. 실제로도 그럴까.

- 자녀의 학교 활동을 대신 해준 적이 있나.

“관심과 열정은 모든 학부모들이 비슷할 거다. 그런데 교수라는 직업적 특성상 교육에 유리한 건 사실이다. 요즘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나 수행평가 등 활동보고서 쓸 일이 많다. 입시에선 소논문 실적을 내기도 한다. 논문 쓰는 게 직업인 교수 입장에선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보통의 학부모들에게 매우 어렵다.”

- 보고서를 대신 써주기도 하는가.

“써주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작년에 처음으로 학교에서 열린 과학경진대회에서 조언을 해주었다. 문제를 제기하고 어떻게 연구 모델을 설정할 것인지, 그 과정과 결과는 어떤지, 사회적으로 갖는 의미와 한계점은 무엇인지 등 프레임의 의미를 설명해줬다. 이런 과정에 부모가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아이에겐 큰 배움의 기회가 된다.”

- 이런 식의 경진대회는 학생 혼자 하긴 어려웠나.

“쉽지는 않다. 부모가 함께 만들어주거나, 사교육에 맡겨 주문 생산한 것들로 보이는 게 대부분이었다. 학교 근처에 200, 300만원만 주면 각종 경진대회 작품과 보고서를 만들어주는 곳이 많다. 부모의 지력, 또는 재력이 없다면 교내 대회에서 학생 스스로 상을 받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실제로 자녀의 학교 활동을 부모가 대신해주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심한 경우에는 본인의 연구 논문에 미성년 자녀를 공저자로 올리기도 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2007~2017년 전국의 4년제 대학 교수들이 미성년 자녀를 자기 논문에 공저자로 올린 사례가 138건에 달했다. 가장 많은 대학은 서울대로 14건이었다.

이중 53건에 정부 예산까지 투입됐다.(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 가장 많은 예산(22억9164만원)이 지급된 서울대 A교수의 논문에는 당시 고3이었던 자녀가 공동저자로 올라 있는데 이 자녀는 실험하는 것을 돕거나 영문 철자 등을 교정했다고 한다. 다른 교수들의 경우 자녀가 실험을 돕거나 잡일을 맡는 등 역할을 했다는 해명이 나왔다.

김 교수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입시나 각종 국가시험처럼 ‘한판 승부’로 삶이 결정되는 한 무슨 제도를 갖다 놔도 공정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학벌에 기대지 말고 평생 갈고 닦아 능력을 쌓아야 인정받을 수 있고, 무능하면 퇴출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지금의 ‘입시지옥’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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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는

 2005년부터 기자 생활을 했다.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출입처를 거치며 시민·미래·인문 분야의 보도에 집중했다. 4차 혁명시대엔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란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 다가올 미래를 인문의 관점에서 통찰한 '인간혁명의 시대' 등을 썼다. 유네스코가 15년마다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 행사에서 세계시민교육을 주제로 기조발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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