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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체육관 생활을"... 대피소서 두번째 설 맞는 포항지진 이재민

중앙일보

입력

1월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 전경. 포항=김정석기자

1월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 전경. 포항=김정석기자

설 연휴를 이틀 앞둔 1월 31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 체육관 앞은 행인이나 차량도 없었다. 체육관 안에서 백발이 성성한 70대 노인이 나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가 눈 내리는 허공에 몇 번 연기를 내뿜고 다시 들어가는 동안 체육관 앞은 인적도 없이 노인이 내쉬는 한숨 소리만이 가득했다.

규모 5.4 지진 발생 후 1년 2개월 시간 지났지만 #흥해실내체육관엔 여전히 40여명 이재민 머물러 #"두 번째 설에도 자식들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다" #포항시-한미장관맨션 주민들 행정소송 진행 중

1년 전까지만 해도 체육관은 이재민과 공무원, 취재진, 봉사자 등이 뒤엉켜 난장판이었다. 반면 지금은 겉으로 봐선 일반 체육관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규모 5.4 지진이 일어났던 당시 풍경 그대로다. 1·2층에 설치한 220여 개의 텐트가 철거되지 않아서다. 이곳엔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 40여 명이 머무르고 있다.

1월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 220여 개의 텐트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40여 명의 이재민들이 여전히 생활하고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1월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 220여 개의 텐트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40여 명의 이재민들이 여전히 생활하고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1월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 220여 개의 텐트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40여 명의 이재민들이 여전히 생활하고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1월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 220여 개의 텐트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40여 명의 이재민들이 여전히 생활하고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흥해실내체육관은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 지진이 일어난 직후 이재민 대피소가 됐다. 그렇게 1년여가 지나면서 체육관 내부는 살림집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텐트에 널어둔 빨래, 2층 난간에 놓인 화분들, 무료함을 달래줄 읽을거리와 운동기구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정작 이재민들은 대부분 텐트 안에 웅크리고 누워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텐트에 누워있던 신순옥(69·여)씨는 "명절에도 코앞에 있는 내 집에 돌아가지 못해 가슴 아프다"며 "외지에 나간 자식들에게 올해도 오지 말라고 했다. 설날 아침 물 한 그릇 놓고 남편과 간단히 차례를 지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오랜 바깥 생활에 심신이 지치다 보니, 기자가 말을 걸면 화를 내는 이재민도 많았다. 한 60대 남성은 "처음엔 취재에 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의도와는 다르게 보도가 나가고 여론도 '보상금을 노리고 버틴다'는 식으로 흘러가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50대 여성은 "여론의 관심이 줄어드니 기자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며 실망감을 내비쳤다.

1월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 2층 난간에 이재민들이 가져온 화분들이 놓여져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1월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 2층 난간에 이재민들이 가져온 화분들이 놓여져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1월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 내부에 이재민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1월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 내부에 이재민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지진 발생 직후 이재민 수는 1000명 이상이었다. 당시 이재민들은 흥해실내체육관을 비롯해 포스코수련원 등에 흩어져 생활했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 새집으로 이사했거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원한 임시 주택에서 살고 있다. 이제 남은 대피소는 흥해실내체육관이 유일하다. 이재민들이 어째서 지금도 남아있는 걸까.

체육관에 남은 이재민들은 이곳에서 500m 정도 떨어진 '한미장관맨션'에 살았다. 이 맨션 주민들은 포항시가 건물 점검에서 소파(小破·일부 파손) 판정을 내린 뒤 귀가하도록 했지만 따르지 않고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다. 사람이 살기 힘들 정도로 건물이 부서져 귀가할 수 없다고 한다.

1월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전경. 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여파로 외벽에 손상이 나 있다. 낙하물 피해를 막기 위해 그물이 설치돼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1월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전경. 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여파로 외벽에 손상이 나 있다. 낙하물 피해를 막기 위해 그물이 설치돼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포항시는 지진 발생 후 전문업체에 의뢰해 이 건물을 정밀점검했다. 그 결과 전체 4개동(240세대) 전체가 C등급(소파) 판정을 받았다. 주민들은 이에 반발해 자체 선정한 전문업체에 점검을 맡겼다. 여기선 2개동은 E등급, 2개동은 D등급 판정을 받았다. E등급은 전파(全破), D등급은 반파(半破)에 해당한다.

두 점검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건 서로 적용한 설계기준이 달라서다. 포항시가 의뢰한 전문업체는 건물 신축 당시인 1988년 설계기준을 적용했고, 주민들이 의뢰한 전문업체는 2016년 개정된 구조안전성기준을 적용했다. 행정안전부는 '설계 당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냈고,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은 결국 이주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포항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이 지난해 2월 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포항지진 주거안정 대책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지진으로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는 등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포항시 등이 실시한 안전진단에서 '사용 가능' 판정이 내려져 주거지원 대상에서 빠졌다"며 "불과 30여m 떨어진 대성아파트는 철거대상으로 분류돼 안전한 곳으로 옮겨간 반면 우리는 벽체가 갈라진 아파트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스1]

포항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이 지난해 2월 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포항지진 주거안정 대책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지진으로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는 등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포항시 등이 실시한 안전진단에서 '사용 가능' 판정이 내려져 주거지원 대상에서 빠졌다"며 "불과 30여m 떨어진 대성아파트는 철거대상으로 분류돼 안전한 곳으로 옮겨간 반면 우리는 벽체가 갈라진 아파트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스1]

포항시 관계자는 "이재민 법적 구호 기간인 6개월이 훨씬 지났지만 주민들이 귀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피소 운영을 종료하기도 어렵다"며 "관련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고 3월 14일 첫 변론이 이뤄지는 만큼 그 결과를 기다려볼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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