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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말하는 「중국속의 한국문학」좌담|"사회주의 탈피 다양한 삶을 표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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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국의 한인문인 김철(58·시인·저널리스트) 김성휘(55·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부주석)씨가 최근 국내에 들어왔다. 이들은 우리 문인·언론인등을 만나 교류의 확대와 상호협조 가능성등을 모색하고 있다. 연변작가의 집 설립준비위대표 이호철씨(소설가)가 이들을 만나 중국 한인사회에서의 민족의식·문화운동등에 대해 대담을 나누었다.【편집자주】
▲이호철=두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고국에 오셨는데 느끼신 점은 무엇인지요. 우리쪽에서 TV화면을 통해 연변자치주 조선족의 삶의 모습을 볼때 재래의 민속이 잘 보존돼 있고 따뜻한 인간의정을 느낄수 있어 일말의 그리움내지 동경심을 갖습니다.
▲김철=이번 고향땅 전남곡성을 근 반세기만에 처음 밟아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인 42년, 그러니까 12살때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옛날 마음속에 있던 고향은 다 사라지고 새로운 자태의 고향이 나타나니 기쁘면서도 섭섭합니다.
▲김성휘=나는 원래 중국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에서의 첫인상은 내 말과 글이 통하는 나라, 내 말과 글의 고향, 선조의 고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연변자치주뿐 아니라 소련 타슈켄트 등지의 한인들은 농사 잘 짓고 노래, 춤 잘한다는 평이 나있더군요. 우리민족은 예부터 가무에 능했다는 것이 실감나는 평이지요. 현재 중국에서 우리민족의 분포는 어떠합니까.
▲김철=2백만명 정도가 살고 있지요. 중국대륙 각지에 다 퍼져있지만 대부분 연변조선족 자치주에 밀집해 있습니다.
▲이=재일교포와 재중국동포를 만나보면 차이를 느낄수 있습니다. 연변사람들은 교포라는 말을 안 쓰더군요. 그만큼 연변사람들은 민족의식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중국에 대해 충성심이 강한 것 같아요.
이 점이 일본국가에 대한 소속감이 약한 재일교포들 하고는 다른 것 같아요. 이것은 혹시 중국이 소수민족 정책을 잘 쓴데 기인한것 아닐까요? 연변동포들의 중국에 대한 국가관과 우리 민족에 대한 의식은 어떻습니까.
▲김성=세계 각지에 흩어진 우리민족중 우리만이 자치정부를 갖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어떠한 소수민족이든 다 자기네의 자치정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소수민족정책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연변조선인들은 대부분 초등교육에서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한글로 교육받고 있습니다. 또 모든 시책에는 민족의 자치권이 규정돼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중국적 조선사람이고 교포가 아니라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인이라 볼 수 있겠죠.
▲김철=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는 중국대륙에 살고 있는 민족은 다 평등하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중국에는 56개 민족이 있는데 다수인 한족만 제의하고 55개 민족이 소수민족입니다.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에 특별법령을 내려 더 도와주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조선사람은 입쌀을 좋아하니까 입쌀을 더 준다든지, 또는 조선어로 시험을 보면 추가점수를 더 주는 방법등으로 말입니다.
▲이=그래도 소수민족으로서 어려운 문제가 있겠는데 혹시 한족들 틈에 흩어져 있는 조선민족들은 불가피하게 한족화되고 마는것 아닙니까.
▲김철=중국의 소수민족중항일·해방전쟁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민족이 바로 조선족입니다.또 우리는 일찌감치 이곳으로 진출, 땀으로 이곳을 개간했습니다.
이러한 피와 땀으로 해서 우리는 떳떳한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일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족과 동등하게 고위관직에 오를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소수민족들과 다른 점입니다.
▲이=연변동포들에게는 남북분단이 심정적인 아픔이기도 하고 실제적으로 어려운 점도 있을텐데 남북분단에 대한 중국동포들의 시각은 어떻습니까.
▲김성=중국동포들이 생각하는 남북분단을 타향으로 시집간 딸의 친정에 대한 심정에 비유해보고 싶습니다. 아버지·어머니 어느 편도 들기 힘들겠지요. 둘다 화해하기를 바라는 심정일뿐 입니다.
▲김철=중국대륙에는 조선팔도강산 사람들이 다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과 북에 대한 편견은 전혀 없습니다. 같은 핏줄이기에 서로 합쳐 의좋게 지냈으면 하는 소박한 소망뿐 입니다.
고향이 나는 전라도고 아내는 함경도니 우리 집만큼은 남북통일이 된 셈이지요(웃음).
▲이=연변에서의 출판·문학현황은 어떻습니까.
▲김성=중국에는 중국작가협회 산하에 31개 분회가 있습니다. 30개 성마다 한개의 분회가 있고 연변은 특별히 한분회가 있습니다. 조선족은 성을 이루지 못하고 자치주에 불과함에도 특별히 연변 조선족 분회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분회는 연변에 거주하는 문인뿐아니라 중국 각지에 거주하는 조선족 문인은 다 포괄하고 있습니다. 작가협회에서 활동하는 조선족 문인은 38명이고 연변분회에서는 4백80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예잡지는 연길의 『천지』 『아리랑』, 길림의 『도라지』, 장춘의 『백두산』, 하르빈의 『송화강』, 심양의 『갈매기』, 목단강의 『은하수』, 통화의 『장백산』등이 있습니다.
이중 연변분회의 기관지는『천지』 인데 최고부수 6만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소수민족문예지 가운데 6만부 발행은 드문 일로 이는 조선족의 문학적 향취가 높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김철=인구비례로 볼때 중국에서 우리민족이 가장 많이 잡지를 보고 있어요. 동포 30명당 1부씩 발행하고 있으니 대단한 문학열이지요. 이것이 바로 연변이 자치주임에도 불구, 작가분회를 설치케 된 원동력이지요.
▲이=그곳의 문인 활동은 어떻습니까.
▲김성=중국의 작가들은 대부분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 여가에 문학활동을 하는 업여작가입니다. 그에 비해 문학에만 종사하는 전직작가들은 아주 드뭅니다. 조선인중 전직작가로 활약하는 사람은 10명입니다. 전직작가는 다시 1, 2, 3, 4급으로 창작공로와 경력에 따라 분류되는데 이들중 1급에게는 교수급에 해당하는 대우가 부여됩니다. 물론 월급도 나오고 원고료도 따로 받지요.
▲이=북간도로 불린 연변에는 오래전부터 우리민족이 이주해 살아 해방전에 이기영 유치환 강경애 박계주 염상섭 윤동주 윤일주 곽종원 안수길 박영준 이석훈 손소희 김달진씨등이 활동했습니다. 이들중 그대로 그곳에 남은 문인도 있고 북으로 간 문인도 있고 남으로 간 문인도 있습니다. 즉 해방전의 연변문학이 세쪽으로 쪼개진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연변을 중심으로 통합시킬수 있지 않을까요.
▲김철=바로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일이 그것입니다. 『심청전』 『춘향전』 등의 고전은 물론 광복전 만주땅에서 일어났던 문학은 우리 민족 공통의 것입니다.
광복후 세개로 갈려 각기 갈 길을 가고 있는 문학을 통합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최근 중국 당국에서 「조선문학선집」 을 엮고 있는데 거기에는 광복전 중국땅에서 생산된 문학이면 그사람의 정치적 이념이 어떻든 남으로 갔든 북으로 갔든 다 수록하기로 이미 결정됐습니다.
이는 민족문학의 통합을 위해 중요한 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연변, 북·남문학을 비교해볼때 연변과 북쪽은 이념상 상당히 흡사한 것 같습니다. 예로 『피바다』 는 중국에서 먼저 창작된 것 아닙니까.
▲김성=항일문학 전통이 연변이나 북쪽 문학의 저류에 흐르기 때문으로 봅니다. 항일문학을 남쪽 문학사에서도 좀더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윤동주의 경우가 항일문학으로 남쪽과 연변을 잇는 중요한 고지가 될 수 있겠지요.
▲김철=결국 해방후 연변은 물론 남북 모두에서 각기 자기문학사만 만드는데 급급했기에 모두다 부분적이라 볼 수밖에 없어요. 이것은 역사를 존중하는 태도라 볼 수 없습니다. 광복전의 문학은 내것이면서 네것이고 네것이면서 내것입니다. 남북통일을 위해선 이러한 문학사를 존중, 문학 먼저 합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서울에도 연변소설·시집이 많이 소개됐습니다. 소설로는 김학철의 『항전별곡』 『격정시대』, 이근전의 『고난의 연대』, 또 여기 계신 김성휘 선생의 『포로』 등이 있고 시로는 역시 이자리에 나오신 김철 선생의 『동틀무렵』 이 대표적이지요. 대개 항일과 유랑의 파란에 찬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어 그 강한 사실성에 주목합니다. 문화혁명 이후 조선족의 문학동향과 활동상은 어떻습니까.
▲김철=한마디로 활발합니다. 4인방이 부서진 이래로 계속해서 사회가 개방분위기를 타고 있고 따라서 글쓰는 행위도 자유롭지요. 50년대의 백화제방·백가쟁명 무드를 능가합니다. 작가의 자율에 맡긴 상태지요.
경향성을 보면 아무래도 노년층은 옛방식을 고수합니다만 중·청년층은 형식도 다양하고 연애시등 소재도 제각각입니다. 특히 젊은 층은 과거엔 부르좌적 퇴페라고 비난받던 몽롱시 (일종의 애정시) 를 많이 씁니다.
문학의 기능에 대해 노소간의 이견도 있습니다만 이는 역사나 인민들이 판결할 문제라는데 인식을 같이 한 상태입니다.
▲이=여기서 듣기로도 남주길의 『마음의 십자가』 , 허해룡의 『여주인』 을 비롯, 정세봉 김종운 한원국 임원춘 장지민등이 다양한 테마와 소재로 제각기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친다는데 이 다양함이 요즘 연변 삶의 실체가 아니겠습니까.
▲김성= 그렇습니다. 과거엔 사회주의 리얼리즘 한가지 입장에서만 글을 썼지만 지금은 달라요. 의식의 흐름등 미학과 작법의 여러 이론을 광범위하게 채용합니다.
그러나 연변문학은 전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초창기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연변지역은 농경사회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산업화가 안돼 산업사회가 몰고 오는 여러 문제를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이=그렇군요. 화제를 좀 돌리지요. 소련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등소평의 이른바 「진리는 실천만이 검증한다」 는 개방명제는 서로 닯은데가 많은 느낌임니다. 경제개방은 중국이 앞서고 정치쪽은 소련이 앞선듯 한데 중국체제의 현상황과 앞날은 어떻게 봅니까.
▲김철=근본적인 체제부정이 아닌한 언론자유를 비롯한 제반 권리를 보장합니다.
북경시위도 머지않아 잘 수습될 것으로 봅니다. 서울의 보도를 보니 등소평과 이붕을 강경보수파로 규정하고 조자양을 그들에 대항하는 개방파로 보도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등도 이도 조도 모두 개혁의지는 같습니다.
▲이=어쨋든 북경대학생들의 주장에는 타당한 부분도 많은 느낌이예요.
▲김성=관료들의 부패, 관료적 작풍은 고쳐야지요. 이건 지도층 생각도 같아요.
▲김철=관리들의 부패를 없애려고 정부가 늘 노력합니다. 정부도 학생도 개혁이라는 대전제는 합의를 봤습니다. 물가고나 관리부패 문제로 국민들의 불만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두분 다 중국공산당원인데 공산당원이 서울의 신문사에서 좌담하리라고는 몇해전까지만 해도 상상할수 없었던 일입니다.
우리의 민주화와 중국의 개방화가 만들어낸 작품인데 눈을 한반도로 돌러보면 남북을 문화적으로 통합해내는 우회적 방법으로서의 연변의 실체가 큰 의미를 가집니다. 한국과 연변간의 교류는 앞으로 어떠해야 된다고 봅니까.
▲김성=내왕이 잦아야겠지요. 남한에서의 도움은 물론이겠거니와 북으로부터도 도움을 바랍니다. 우리는 한민족입니다. 남북간의 교류, 또 남과 중국과의 교류에 있어 어쩌면 제3자적 입장에서의 책임과 의무를 느낍니다.
최근 한국문인들이 추진하고 있는 연변내 「작가의 집」 설립에 대해 고마움을 표합니다.
▲이=한국과 연변사이가 좁혀질수록 북한이 소외감을 느끼게 하면 안되겠지요. 민족의 동질성이라는 입장에서 사물을 보는, 또 그렇게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듯 합니다.
▲김철=나는 공산당원입니다. 서울에 와서 이를 숨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남쪽의 민주화 덕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서울도 자유롭고 중국도 자유로워요. 그동안 서로 문을 닫고 지내다보니 오해가 없지 않았지만 풀어야겠습니다.
▲이=교육·학술, 나아가 경제교류의 가능성을 어떻게 봅니까.
▲김성=연변 조선족이나 한국국민이나 다같은 습관과 문화를 가진 한뿌리의 민족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괄목할만한 경제력·산업기술이 연변족으로 뻗쳤으면 좋겠습니다. 현단계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지원입니다.
▲이=우리가 연변동포들의 생활을 볼때는 첫 느낌이 아하 이게 한국인들의 살아가는 원모습이 아닌가. 이게 바로 우리가 산업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우리들의 정서의 한원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두분이 바라는대로 고도의 산업기술력이 연변의 모습을 바꿔놓으면 인간성의 상실이랄까 고유의 정서체계가 파괴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우리 것, 우리문화를 튼튼히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큼니다.
▲김성=산업화 물결이 밀려오면 어느정도의 물질문명오염은 감수해야겠지요.
연변이 「영원한 한국의 민속촌」 이 되길 바라십니까 (모두 웃음).
▲이=두분을 뵈니 통일에의 염원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바쁘실텐데 오랜시간 자리를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이헌익·이경철기자>

<참석자>
김철

<시인·저널리스트>
김성휘

<중국작자협회 연변분회부주석>
이철호

<소설가·연변작가의 집 설립준비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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