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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답방, 북·미 회담 성공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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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넘어 당사자들의 국내 정치에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우선 자국에서 난관에 봉착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대중의 관심을 분산시킬 외교적 성과에 절박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 진전과 국제 제재완화가 절실하다. 신년사 등에서 경제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만큼 경제 번영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정치적 입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는 얘기다.

국내 정치 난관 맞닥뜨린 트럼프 #경제 제재 완화 절실해진 김정은 #북·미 모두 정상회담에 기대 커 #북 신뢰 못한다는 우려 목소리도

중국은 저조한 경제 성장률과 끝날 기미가 없는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 대처하느라 여념이 없다. 대만에 호의적인 국제여론과도 대립하는 상태다. 이런 와중에 국제사회에서 유리한 입장을 선점하려면 중국 없이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부각하는 동시에 북한 도발을 저지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여러 국내외 난제에 직면해 있다. 문 대통령이 매달려온 남북관계가 다시 교착 상태에 빠지면 개인적 실망을 넘어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게 자명하다.

이 사이 두 인물의 태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북·미정상회담에 무관심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의욕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면담하고 김 위원장과 친서를 교환했다. 김 위원장도 달라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김영철 편에 전달한 친서에서 “비핵화가 핵무기 제거를 의미한다는 데에 미국과 뜻을 같이한다”고 적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믿음을 줬다고 한다. 진정성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보도대로라면 북한 최고지도자가 사상 처음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승인한 셈이다.

북한은 비핵화 대가로 막대한 보상을 바랄 것이 분명하다. 1월 초 스톡홀름에서 남북과 미국이 나란히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는 사실은 북한이 경제 원조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특히 집중할 것이라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친서 교환 후 양측 정상의 반응으로 볼 때 협상 내용과 무관하게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이 협상에 만족하고 있다.

글로벌 포커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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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정상을 제외한 다른 당사자에게도 이 협상이 득이 될지는 북한 제안의 신뢰성 여부에 좌우된다. 답을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많은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 지적한 대로 현재까지 정상회담을 위한 공식 준비가 거의 없었다. 단 몇 시간에 불과한 스톡홀름 3자 회동만으로 협상에 필요한 복잡하고 까다로운 세부사항을 모두 논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조짐이 좋지 않다. 김 위원장이 정말 진지하고 신뢰할 만하며 검증 가능한 협상안을 제시한 것이라면 북한은 대북 경제원조를 받아내 경제발전 계획에 필요한 든든한 기반을 얻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헛된 약속에 기만당해 중요한 것들을 거저 내주는 심각한 위기를 자초한 셈이 된다. 경제적인 양보 이상의 엄청난 타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비용 인상을 요구하는 점에 비춰볼 때 미 국방부의 강경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측에 주한미군 감축을 협상안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남북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동안 남북 모두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해 말을 아껴 왔다. 지난 연말만 해도 성사가 어려워 보였지만 만약 북·미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서울에서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그간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 진전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데에 골몰했다. 신년에서도 “과거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경이적인 성과를 짧은 기간에 이룬 데 대해 대단히 만족한다”고 발언했다. 문 대통령은 이 말에 분명 안심하며 만족했을 것이다. 이제 상황이 어떻게 진전될까.

첫째, 여러 정치적 배경의 급변을 고려할 때 북·미 관계가 악화하면 양측 모두 잃을 게 훨씬 많아졌다. 북한과 미국이 2017년처럼 과격한 언어를 서로에게 난사하며 대립하는 상황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얘기다.

둘째,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회담 연기는 있을 수 있지만, 세부사항 논의용이라면 오히려 회담에 유익하다. 양측 정상 모두 회담에 적극적인 데다 한국은 이미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중국도 만족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제기된 의혹들이 거의 해소된 만큼 북·미정상회담 후에 서울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일지, 실망스러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지금으로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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