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아닌 「농민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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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제32회 전국역사학대회(대회장 차하순 교수·서강대)가 26,27일 서강대에서 열렸다·프랑스혁명 2백주년을 기념해「역사에서의 혁명」을 공동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진보적 소장학자들에 의한 변혁 운동론적 연구경향과 관련해 기존 학계의 문제의식과 연구성과를 폭넓게 보여줌으로써 큰 관심을 모았다.
대회 첫날 정창렬 교수·(한양대)는 「동학운동-반란인가, 혁명인가」라는 주제발표에서 동학운동을 반봉건·반식민·반자본주의를 구체적 내용으로 한 근대화를 지향하는 「농민전쟁」으로 규정했다.
정교수는 『l894년의 농민전쟁은 국가와 지주에 의한 봉건적 수탈의 강화, 일본의 대한 경제 침략으로 인한 생활상태의 악화만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고 말하고『현실의 세태를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으로 단정하고 「상제의 세상」을 새롭게 창건해야한다는 동학사상이 농민전쟁발생의 주체적 조건가운데 하나였다』고 했다·동학은 현실의 모순을 개별·특수 차원을 넘어 농민층 일반의 보편적인 문제로 인식 할 수 있게 하는 사상적 도약대의 구실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따라서 동학은 국가와 지배계급에 대해 저항하는 농민들에게 행동의 정당성을 확신하도록 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그러나 동학은 인간의 의지와 실천행동이 아닌 상제의 의지와 조화를 중시함으로써 현실의 세상을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자체 한계를 갖고있다는 것이다·
정교수는 농민군의 정치적·사회경제적 지향을 실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던 집강소 개혁사업단계에서의 실패원인을 전봉준·감개남 두 진영의 현실인식과 개혁노선의 분열에서 찾았다 그리고 이 분열의 원인은 농민군이 새로운 생산력구상과 국가구상의 프로그램을 가질 수 없었던 자체 취약성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2차 동학농민전쟁을 개화당과 일본 침략세력을 완전한 일체로 파악하고 식민지화의 위기를 자각한 반제민족전쟁으로 규정했다.
결론적으로 동학운동은 동학사상을 바탕으로 반봉건·반식민의 성격을 분명히 함으로써 단순한 반란은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정치권력의 담당주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새로운 국가구상의 명백한 프로그램과 생산력구상이 결여됐다는 점에서 혁명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둘쨋 날 서양사부에서 최갑수 교수(서울대)는 「분단국가와 역사인식의 이질화-독일 3월 혁명의 해석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동서독이 혁명해석에 있어 심한 이질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동독은 1848년 3월 혁명의 주요과제로▲귀족·군주제적 지배체제의 소멸 ▲부르좌지의 정치적 지배권 완성▲통일적 국민국가의 형성 등으로 본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를 사회주의 내지는 공산주의에의 이행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치게 되는 부르좌 혁명의 단계로 파악하고 이 혁명에 가담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또 동독은 독일의 시민계급이 봉건적 국가체제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아래로부터 솟구치는 민주적 역량을 두려워한 나머지 민중을 배반하는 반혁명적 태도를 노출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최교수는『동독 역사학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 역사발전의 틀을 미리 준비해 그에 맞지 않는 역사운동은 「배반」으로 단정하면서 동시에 그 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이율배반과 비역사적 관점을 노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동독역사학이 역사의 추진력으로서 부르좌지의 역할과 배반을 대비한데 반해 서독 역사학은 시민계급의 자유주의 노선을 역사적 역할로서가 아니라 한정된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당파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단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독역사학의 혁명해석이 당시의 다양한 사회구성을 다원주의에 입각해 분석하고 통합·참여·분배라는 측면에서 고찰함으로써「사회주의로 가는 필연적 과정으로서의 부르좌 혁명」이라는 동독의 교조적 시각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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